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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 교수
여전히 우리나라에 인명 피해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43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안전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노력이 아직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안전한 국가를 만들려면 우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제가 잘 갖춰져야 하고, 다음으로 그 법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감시·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먼저, 우리나라의 법제는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을 만큼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사고가 발생하면 항시 그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많은 지적이 나오는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대부분이다. 이것이라도 제대로 됐으면 좋겠는데, 사고 발생 당시에만 시끌벅적할 뿐이고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지적된 문제점은 충분히 개선되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지 못한 채 유사한 사고가 재발하기 일쑤다. 선진국의 우수한 법제를 시급히 받아 들이는 특단의 체계적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언론보도를 보니, 일본의 건축 소방법은 높이가 31m 이하인 건물의 3층 이상부터는 빨간색 역삼각형(▼) 스티커를 유리창에 부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한 변의 길이가 20㎝인 아크릴판 삼각형인데, 화재나 지진 등 비상 상황 시 소방대원들이 구조를 위해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소방대 진입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건물 바깥에서 보면 빨간 삼각형이고, 건물 안쪽에서 보면 ‘소방대 진입구’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 어떤 용도인지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재난 발생 시 이곳에 와서 구조를 기다리거나 유리를 깨고 완강기를 사용해 탈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용도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기자는 우리나라 건물에도 이런 표시(▼)가 있었더라면 많은 인명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일본이 저 빨간 표지를 붙인 건 벌써 수십 년 됐다. 90년대 초반에도 많았으니까. 일본에 들락날락한 관련 공무원들은 놀러만 다녔다는 얘기다"라는 비판적 내용도 보인다.

 참 안타까운 얘기다. 수많은 공직자와 국민들이 연수·관광 등의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었는데(2017년 일본을 방문한 국민의 수는 714만여 명이다), 이러한 일본의 우수한 제도를 여태껏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은 한심한 일이다(일본의 어느 공공기관 직원이 "한국에서 온 연수생들은 맨날 같은 자료를 요청하고, 같은 질문을 하더라.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다. 습득한 자료와 정보를 잘 공유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푸념하더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공직자들이 독창적인 법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외국의 우수한 법제를 베끼기라도 잘 했으면 좋겠다. 물론 우수한 법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건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우리 법제의 내용을 살펴 보면, 수십 년 전에 마련된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규정, 실효성을 상실해 이미 사문화된 규정들이 잔재해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체계적·종합적인 검토 없이 땜질식 개정을 반복하다 보니 법조문만 많아지고 누더기처럼 된 경우도 있다. 주기적으로(예컨대 3년마다) 모든 법제의 합리성을 전면 재검토해 적시에 필요한 개정을 해야 한다.

 이제 국무총리 주관하에 법제처, 법무부 등 모든 정부 부처가 대대적인 법제 정비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국회도 나서야 한다. 사법부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불합리한 법제에 대해 활발히 개정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법제연구원 등 연구기관도 나서야 한다. 사회 모든 부문에서 선진국의 우수 법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효율적인 벤치마킹을 위해 외국 주재원, 유학생, 교포, 여행가이드 등으로부터 법제 정보를 정기적·계속적으로 수집해야 한다(인센티브도 부여해야 한다). 또한, ‘법제 개선 아이디어 현상 공모’를 실시해 많은 국민들로부터 아이디어를 구해야 한다. 우수한 ‘법제 강국’이 됨으로써,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지적 인프라와 소프트웨어를 잘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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