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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

우승오 기자 bison88@kihoilbo.co.kr 2018년 03월 07일 수요일 제10면

기자가 아는 어떤 분은 술잔을 돌리는 걸 경기하리만치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잔을 돌리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한다기보다 잔을 돌리기 전에 이뤄지는 ‘불필요한’ 예비동작과 잔을 건네는 ‘오만한’ 방식을 경계한다. 적어도 그에게는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술잔을 돌린다는 것은 세균을 함께 나누겠다는 의미다. 한데, 대개의 경우 잔을 돌리기 전에 하는 행동들이 마뜩잖다는 것이다.

 스스로는 예의라고 여기는지 모르지만 얼굴과 손에 묻은 때를 구석구석 훔쳐낸 물수건에 잔을 문지러거나, 냅킨으로 입술이 닿을 잔 주변을 돌리는 행위가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한 술 더 떠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을 이용해 잔을 던지듯 건네기라도 하면 인상 좋은 그의 얼굴은 금세 일그러진다. 주먹을 날리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휴지로 잔을 닦거나 물로 씻을 바에야 차라리 세정제나 살균소독기를 사용하라고 에둘러 잔을 돌리는 의미를 일깨운다.

 잔을 던지는 것 또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 이전에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사용할 정도로 신성한 음식인 술을 따를 용기인 만큼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야 한다는 게 그가 술을 대하는 기본 자세다.

 흔히 우리는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왜 나는 이리도 지지리 복이 없을까. 아이고 내 팔자야"하며 신세타령을 늘어놓곤 한다. 한탄이라도 해서 직성이 풀린다면야 말리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나, 신세타령을 하기에 앞서 팔자가 꼬이는 원인이 섬세함의 부족에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할 일이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했듯 술잔을 돌리면서 예의라는 이름으로 잔을 어딘가에 문지르거나 담그지는 않았는지, 잔을 건네면서 손가락은 몇 개나 사용했는지 등등 구체적인 행동양식을 이름이다. 적어도 기자에겐, 사장과 값비싼 복어회를 먹은 뒤 다음날로 해고됐다는 어느 이름 모를 운전기사의 ‘웃픈’ 일화가 섬세함을 일깨우는 교훈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장의 발 역할을 충견처럼 했다는 운전기사는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한다지만 복어회를 두 점씩 집었다나 어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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