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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분쟁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02년 08월 25일 일요일 제0면
독도가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기록은 서기 512년 삼국사기의 신라 본기 이사부조에서 부터다. 당시 우산국이라는 나라를 형성하고 있던 울릉도와 독도를 신라장군 이사부가 정벌해 신라의 영토로 부속시켰다. 그러므로 울릉도와 독도는 비로써 서기 512년에 한국 영토의 원년이 된다. 이후 1881년 고종은 울릉도 개척령을 발표해 척민 정책을 실시, 조선 정부는 울릉도를 침입하는 일본 어민들에 대해 일본정부에 엄중히 항의했으며 1년 뒤 우리 정부는 울릉도에 대한 주민 입주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00년 조선은 관보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관할함을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이 무렵 여름철이면 수십명의 어민들이 독도 부근으로 출어를 나가 독도에 작은 집을 짓고 약 10일간씩 기거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1905년 1월 일본은 독도를 무주지로 취급해 각의서에 독도의 일본령 편입을 결의, 시마네현 고시 제401호를 통해, 조선 정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우리정부는 을사보호조약으로 인해 이미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독도는 일본의 패망과 8·15 광복을 통해 다시 우리 영토로 반환하게 된다.

연합군 최고 사령관이 받은 항복문서에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증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독도를 자기내 땅이라고 주장, 세계인들에게는 우리와 일본이 독도분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져 왔다. 이때 국제수로기관(IHO)이 `일본해'를 `동해'로 고쳐야 한다는 한국측의 주장을 받아들인데 대해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일본해' 명칭을 사수해야 된다며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신문의 근본인 공정보도를 요미우리신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외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일본의 후세대 언론인들이 요미우리 신문의 이러한 자세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할 뿐이다.
(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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