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내일을 위한 시간 - 비극의 딜레마

김진형 동국대 강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6월 08일 금요일 제13면
2018060801010003001.jpg

가상의 유토피아 오멜라스의 행복과 번영 이면에는 고통받는 한 아이가 있었다. 기이한 일이지만 지상낙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사람의 불행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도시 오멜라스가 유지되는 방법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통받는 한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다수의 행복을 위해 침묵한다. 이 이야기는 ‘소수의 희생을 통해 다수가 행복을 누리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이 질문에 ‘내’가 직접적으로 개입돼 있지 않다면 비교적 손쉽게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될 경우 교과서와 같은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여기 ‘산드라’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다. 우울증으로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았던 그녀는 회복 후 복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 복직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태양열 전지판을 생산하는 프랑스의 중소기업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었고, 산드라의 복직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투표로 의사를 물었다. "1천 유로(약 125만 원)의 보너스와 동료의 복직 중 무엇을 원하는가?" 이에 다수의 직원들이 보너스를 받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서 산드라의 복귀는 좌절됐다.

 그러나 투표 과정 중 작업반장이 협박과 유언비어를 퍼트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산드라가 복직할 경우 또 다른 누군가는 퇴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산드라를 응원하는 동료의 도움으로 이틀 뒤 재투표가 결정됐다. 생계가 걸린 복직에 희망을 걸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뿐. 쉽지 않은 발걸음으로 산드라는 14명의 동료들을 찾아가 재고의 의사를 묻는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생계가 팍팍한 사람들에게 보너스와 초과근무수당은 쉽게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과연 산드라는 복직할 수 있을까?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큐멘터리적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시종일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카메라와 감정적 동화를 끌어내는 어떠한 음악도 배제한 채 오로지 14명의 동료들을 찾아가는 산드라만 보여 준다. 이 작품은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경험하는 산드라를 통해 ‘당신이 직장 동료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산드라에게 복직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 만큼 동료들에게 보너스도 의미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부업을 해야 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계층임을 감안할 때 1천 유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직장 동료와 산드라는 모두 같은 의문점에 도달하게 된다. 복직과 보너스 중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회사의 결정이었고, 동료들은 산드라의 복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급한 여윳돈인 보너스를 선호한 것뿐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는 회사만을 절대악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생계를 위협받는 그녀의 불행이 개인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통의 무게가 한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것은 더없는 비극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전제로 사회적 안녕이 유지되는 폭력적인 구조를 통해 이 작품은 냉철하게 우리의 오늘을 비추고 있다.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저작권자 ⓒ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