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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인프라 활성화·차별화된 축제로 피어난 ‘문화특별시’

부천시만의 개성을 입히다

최두환 기자 cdh9799@kihoilbo.co.kr 2018년 07월 23일 월요일 제28면

1973년 7월 1일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됐다. 부천시는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벗어나 중동신도시 조성과 급격한 도시화로 인구 87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됐다. 지금은 ‘복사골예술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천국제만화축제’, ‘부천아트밸리’ 등 문화축제 개최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국내 굴지의 오케스트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보유하고 있는 등 문화특별시 부천시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 1988년, 서울의 위성도시

 30년 전 부천은 국내에서 처음 열린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인 서울의 위성도시로의 역할을 해냈다. 당시 부천시는 인구 58만4천여 명에 15만7천 가구가 채 되지 않았다. 자동차 등록 대수는 3만6천35대로 중소 도시로의 면목을 유지했다.

▲ 1989년 부천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어린이 씨름왕 선발 대회
년대 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도시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도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도권의 합리적인 개발과 인구 집중 억제, 무질서한 시가지 팽창 방지를 위해 수도권의 관할구역 조정이 있었다. 이때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됐다. 부천은 30년 전인 1988년 1월 1일 남구와 중구를 설치했다.

 1990년대 중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부천은 도시화가 급격히 이뤄졌다. 중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은 정부의 200만 가구 주택건설계획 실현과 토지 자원의 효율적 이용 및 도시구조 개편, 대규모 택지개발 및 주택 공급 정책으로 탄생했다. 이 사업은 부천시 춘의동·삼정동·심곡3동·상동·중동·송내동 등 6개 동에 걸치는 5만여㎡에 이르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으로 인한 부천의 유입인구는 당초 17만 명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1995년을 전후한 시기에 6개 동의 인구는 26만여 명으로 당시 부천시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1993년 중동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로 중구를 원미구(遠美區)와 오정구(梧丁區)로 나누고, 역곡동·중동·상동을 제외한 남구는 소사구(素砂區)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5년 인천광역시 부평구 서운동 일부가 오정구 삼정동에 편입됐고, 원미구 중1동이 중1동과 중3동으로 분리됐다. 2012년 1월 1일 인구 2만 명 미만의 소규모 행정동을 공동생활권인 이웃동과 통합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소사본1동과 소사본2동 주민센터가 소사본동으로 통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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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당시 부천시 전경
2016년 7월 4일 행정체제 개편으로 3개 구청(원미·소사·오정)이 폐지되고 동의 기능을 강화한 권역별 행정복지센터가 출범했다. 기존의 동은 유지되면서 권역별로 중심이 되는 원미1동·심곡2동 등 10개 동은 행정복지센터로 전환됐다.

 부천시는 해외 자매우호 결연도시 맺기 사업을 활발하게 벌여 1995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시를 시작으로 중국·일본·러시아·미국·필리핀 등 5개국 7개 도시와 결연을 맺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도당공원 장미원
 30년이 지난 2018년 현재 인구는 내·외국인을 포함해 87만3천481명(남 43만5천871명, 여 43만7천610명)이다. 100세 이상 노인이 207명이고, 110세 이상 노인도 47명에 달하는 등 장수도시로 등극했다. 차량등록 대수는 33만3천249대(승용·승합·화물차 포함)로 30년 전보다 인구는 2배 가까이, 등록차량은 약 70% 신장한 거대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부천은 면적이 53.44㎢로 작은 편이나 인구는 87만 명이 넘는 큰 도시다.

 부천이 시로 승격한 지 올해로 45년이 됐다. 15년 동안 성장해 오던 부천시는 30년 전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역 개발로 인한 신도시 건설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섰고, 이로 인한 도로망 확충으로 교통 편리 등 생활의 변모도 이뤄져 신흥 도시로의 면모를 갖췄다. 하지만 원도심 지역의 신도시 개발 무산 여파 등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숙제로 남아 있다.

# 문화예술의 도시로 변화

 부천시는 관선 9대 정태수 시장(1987년 9월 9일∼1989년 8월 31일) 시절 ‘문화도시’를 주창하며 1988년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탄생시켰다. 이후 1995년 7월 첫 민선으로 뽑힌 의사 출신 이해선 시장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문화도시로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뒤를 이어 2기 민선에 원혜영 시장이 들어서면서 부천국제만화축제 등 문화도시 전성기를 맞았다.

▲ 현재 부천시 전경. <부천시 제공>
당시 ‘지하철 7호선’ 부천 연장구간 건설이 이뤄진 후 2012년 결실을 맺었고, 최근에는 부천 소사역에서 안산 원시역까지 잇는 서해선 ‘소사원시선’이 개통돼 사통팔달 교통요충지로 거듭났다.

 문화사업은 민선3·4기 홍건표 시장 시절에도 이어졌다. 특히 민선5·6기 김만수 시장은 부천시의 풍부한 인적 문화예술 인프라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엘리트 예술의 기회를 제공, 감수성 및 창의력을 향상시키고 인성을 함양하는 ‘부천아트밸리’ 사업을 추진해 ‘문화특별시’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사업은 베네수엘라의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를 바탕으로 초기 ‘예술교육특화지구’라는 명칭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공모를 통해 현재의 ‘부천아트밸리’로 명칭을 변경했다.

▲ 부천만화축제를 관람하고 있는 시민들
 부천아트밸리는 시 산하 예술단체원을 우선적으로 강사요원으로 활용해 신청 학교에서 파견 예술교육을 실시한다. 2011년 65개 학교에서 73개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2017년 128개 학교에서 239개의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부천=최두환 기자 cdh9799@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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