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추석을 맞아 대전 고향집에 모였다. 반년 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에서 단연 화제는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반찬으로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함께 지낸 2박3일간의 일정 속 이뤄진 백두산 등반부터, 영부인 패션과 제스처, 북한 길거리 모습, 평양 선언문에 의미와 해석까지, 웬만한 신문사 편집회의보다 치열하고 격렬한 이야기가 반찬거리로 요리됐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연실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의 물꼬는 인천에 사는 작은 아버지가 텄다. 주제는 경제였다. 인천에서 40여 년 동안 소상공인으로 사업체를 운영하시는데 최근 들어 최저임금, 주 52시간제 등 갑자기 바뀐 제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하소연성 화풍이었다. 얘기를 듣던 친형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친형은 언제부턴가 직원들 월급날 일주일 전부터 ‘월급을 줄 수 있을까’라는 자기 두려움이 생겨버렸다고 한다. 이내 월급을 해결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로 인해 자신의 수중에는 수익이 얼마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한다. 외삼촌도 어려움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충북 영동에서 작은 과수원을 운영하는데 올 여름 폭염으로 직격탄을 맞은 차였다. 폭염 얘기가 누진제로 이어졌다. 어린아이가 있는 사촌네는 에어컨을 24시간 돌리는 바람에 전기세 폭탄을 맞았다고 했다.

 식사 중 켜 놓은 TV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의 뒷이야기 얘기가 나왔지만 바닥을 친 민생 경제 때문인지 이 주제는 관심 밖이었다. 취업 준비생인 사촌은 이번 추석에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화살은 우리 부부에게로 향했다. 결혼 3년 차인 우리에게 언제 아기를 가질 예정이냐부터, 내 집 마련 계획은 있는지 등 ‘뫼비우스의 띠’처럼 매년 반복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밥상머리 모든 대화의 끝은 ‘먹고 사는게 힘들다’라는데 방점이 찍혔다. 이번 명절에도 하나같이 다들 어렵다는 얘기만 늘어놨다. 그래도 뒤돌아 보니,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허심탄회하게 나눈 대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만사가 담겨 있다. 내년에도 사랑하는 가족 모두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미(美)친 세상만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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