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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폐형(一犬吠形) 백견폐성(百犬吠聲)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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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어 정보의 무질서 현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영국의 상원 디지털문화미디어위원회는 3개월 전 ‘허위정보와 가짜뉴스’ 대책을 내놓았고, 미국 상원도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테크놀로지 기업의 규제에 초점을 둔 가짜뉴스 정책백서를 발표했다. 프랑스 역시 지난달 ‘정보 조작 :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50개 권고안을 제시했다. 싱가포르도 이 대오에 동참했다.

 우리는 어떤가? 선거 상황에서 요란한 움직임이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나 검찰 등이 서슬 퍼런 경고용 대책을 내놓기도 했고, 지난 대선을 전후해서는 네댓 개의 개정안이나 법이 상정되기도 했다. 마치 선거 때 기승을 부리는 가짜뉴스로 지칭되는 정보의 무질서 현상에 대해 방치하면 큰일 난다는 경고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가짜뉴스’가 선거 때만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이거나 아니면 그때 외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한 태도라고 볼 수 있다는 분위기(?)다. 사실이 그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국내외의 주요 이슈에 대해 어김없이 가짜뉴스가 등장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전 분야에 걸쳐 만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탈(脫)진실의 시대로 직진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가짜뉴스에 유독 조용한 반응을 보이는데 대해 전문가들은 부적절한 용어 사용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영어의 페이크 뉴스를 번역한 가짜뉴스는 ‘뉴스로 위장한 거짓정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정보의 무질서 현상을 뉴스라는 형식에 가둬 놓음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뉴스라는 용어의 부적절성이다. 뉴스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전제로 한 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를 말한다. 그러니까 사실이 아니라면 이미 뉴스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짜뉴스’가 아니라 ‘거짓소식이나 정보’라고 하는 쪽이 인식에 대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위조수표와 가짜수표를 놓고 볼 때 같은 의미지만 뉘앙스와 문제의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위조수표는 중차대한 문제로 여겨지는데 반해 가짜수표는 개인적 일탈 정도로 생각하기 십상인 것처럼. 아무튼 가짜뉴스에 대한 세계 각국의 잇따른 대책이나 우리의 무관심에 가까운 모습 모두가 문제의 본질에서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1800여 년 전 왕부(王符)라는 인물이 저술한 「잠부론(潛夫論)」의 폐형폐성(吠形吠聲)이란 구절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책의 ‘현난(賢難)’편에 나온다. 속담에 한 마리의 개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諺曰 一犬吠形), 백 마리의 개가 소리를 따라 짖는다(百犬吠聲)는 말이 있다. 세상이 이를 우려한 지가 진실로 오래 됐다(世之疾此 固久矣哉). 왕부는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많은 개가 따라 짖는다는 속담을 들면서 이미 오래된 병폐라고 했다. 이미 자신이 안타까워 하는 건 세상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의 실정을 잘 살피지 않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에 대한 비유로 사원씨라는 사람의 사냥 이야기를 들었다. 사원씨가 사냥에 나섰다가 흰 흙을 뒤집어쓴 돼지를 발견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값비싼 사료로 정성들여 키웠다. 얼마가 지나 세찬 바람이 불고 큰 비가 내려 흰 흙이 벗겨지자 보통의 돼지임이 드러났다. 사물의 실상을 온전히 살피지 않고 흰색 동물이라면 맹목적으로 상서롭다고 믿는 어리석은 세태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둘러싼 각종 집회, 남북정상회담, 예멘 난민, 미투, 메르스 사건, 저유시설 화재, 금융위기 등등 중요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거짓 정보를 뉴스라고 속여 퍼뜨리는 일이 다반사고 이런 거짓 소식과 정보에 호응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프랑스의 ‘정보조작: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보고서 50개 권고안에 제1항이 ‘문제가 되는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라’ 제2항이 ‘거짓 정보의 위협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항목을 새삼 곱씹어 보면서 실상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황당한 거짓에 놀아나고 그 위험은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해치게 된다는 사실을 재삼 직시할 때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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