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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인천지부 부회장
일찌감치 송년 모임을 하자고 모였다. 마음 어수선하고 번잡스러운 12월보다는 덜 분주한 11월에 미리 송년모임을 하기로 했다. 맛난 음식점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기엔 시끄러운 곳이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자기네 집으로 가자 했다. 향 좋은 차가 있다며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자숙할 일도 있을 것이고 축하나 격려를 할 일도 있을 테니 차분한 티타임을 갖자는 말에 모두 동의했다. 지인이 타 준 차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과식한 배를 쓰다듬어 속이 편해졌다. 나른한 포만감을 즐기는 티타임이 좋았다. 올 한 해를 보낸 소감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집 주인이 자랑할 게 있다며 손에 들고 와 보여준 것이 독도 명예주민증이었다. 몇몇은 이미 독도 명예주민증을 발급 받은 터라 새로 온 독도 주민을 환영했다. 나도 몇 해 전에 울릉도 독도 여행을 왔다가 명예주민증을 신청해 우편으로 받았던 독도 명예주민증이 있다.

 2010년 44명으로 시작했던 독도 명예주민이 올해로 4만 명을 훌쩍 넘어섰으니 조만간 시로 승격이 될 것이라며 기분 좋은 농담도 했다. 독도와 관련된 자신의 체험담이 화제가 돼 자연스레 독도와 연관된 본인의 경험담을 나눴다. 내 순서가 돼 다문화가정 국토 순례 단원 멘토로 독도를 방문한 이야기를 했다.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독도로 가는 날,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서 독도에 입도할 수 있을지 마음 졸이며 하늘에 운을 맡겼었다. 독도는 영토의 확장뿐만 아니라 독도 사랑으로 국민이 화합하고 단결할 수 있는 구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한때 프랑스 포경선이 발견해 포경선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 록스로, 러시아 해군에서는 올리부차섬으로, 더더욱 억지스러운 일본의 다케시마까지.

 흔들어대는 외풍에도 독도는 굳건했다. 외유내강을 자존으로 여기는 섬 독도는 물속과 지하에 풍부한 자원을 품은 채 지금도 의연하다. 생명을 담보한 작은 배로 최종덕 씨가 왔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자, 그는 분개했고 행동으로 실천해 독도를 지킨 사람이다. 비바람과 파도에 깎인 독도 해안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접안을 위한 시도는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혜와 인내를 밧줄 삼아 독도에 사람이 사는 역사를 만들었다. 1968년에 독도에 시설물을 설치해 해산물 채취를 하며 살다가 1981년 10월 14일에 서도 벼랑 어귀에 주민등록지를 옮기고 22년을 독도사랑으로 살았다.

 독도는 그로 인해 사람의 숨결을 얻었다. 선착장을 만들고 물골을 발견했다. 70도 가파른 절벽 바위틈에서 발견한 식수는 해녀와 풍랑을 피해 온 어선의 어부들에게 생명수가 됐다. 가혹해 보이기도 하는 바위섬에서 그는 후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야생의 절벽 물골 가는 길 계단을 만들고 수중창고를 만들어 전복 수정법을 시도했다. 최종덕 옹이 돌아가고 다시 세월이 흘러 독도에서의 그분 삶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 우리는 너울성 파도로 뱃길이 힘들었어도 마음은 들떠 독도를 보러 갔었다. 새로운 정착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기대와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뀔 때쯤 희망이 보인다. 다른 기후 국가에서 혹은 다른 대륙에서 한국을 향할 때 자신의 심장 한쪽은 그곳에 남겨놓고 온 것 같아 결 고운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말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물과 하늘빛, 공기까지 다른 한국에 이방(異邦)이 아닌 동화(同和)를 원해서 왔어요. 독도를 개척한 최종덕 님의 힘든 적응 과정을 설명 듣고 깊은 공감이 가슴에 밀려들었습니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까무잡잡한 그녀는 강인한 엄마가 되었고 깊은 눈매가 매력인 그녀의 딸과 함께 활짝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독도는 대한민국!" 그녀는 딸과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독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었다. 그녀의 활짝 웃음이 찡했다. 독도는 웅장하고 예뻤다. 웅장과 예쁨은 결코 동의어가 될 수 없는데 독도를 보는 순간 두 느낌이 동시에, 그것도 강하게 내 가슴에 차고 들어 왔었다. 그녀는 굳건하게 정착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잘 살고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녀도 독도 주민이 되었을까? 내 말에 지인들은 이 하늘 아래서 당당하고 자랑스러워질 일만 남았을 테니 그녀는 이미 독도 주민이라고 해서 뭉클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른 송년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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