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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10일 한국거래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적격성에 대해 ‘상장유지’ 결론을 내리기는 했지만, 분식회계 논란은 결국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질 예정이다.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지분법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4조5천억 원 규모의 고의적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재무제표 재작성 시정요구, 감사인 지정, 대표이사 및 재무담당 임원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 원 부과 등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는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바이오젠의 지배력을 반영해 지분법 관계회사로 전환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반발하면서 증선위의 처분을 모두 취소해 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와 함께 취소청구 사건의 판결 시까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집행정지신청도 신청했다.

 이 논란에 대한 국민들의 관점은 엇갈린다.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이재용 부회장으로 승계하는 과정에서 부정행위를 범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과거 정부 하에서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서 입장을 바꿔 분식회계라고 판단한 금융당국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하기에 결국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IFRS는 유럽에서 사용하는 회계기준으로 2011년 국내에 도입됐는데, 기존에 사용했던 회계기준인 ‘일반적으로 인정된 한국 회계기준’(K-GAAP)이 ‘규정 중심’이라면 IFRS는 ‘원칙 중심’ 회계 기준이다. 검찰과 법원이 회계기준의 규범성과 그 위반의 위법성, 회계 부정의 고의성 등에 대해 어떤 형사법적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회계의 목적은 경영자가 경영 활동을 합리화해 능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회계자료를 제공하고(관리목적), 외부 이해관계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기업의 경영활동을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에 따라 측정해 적정한 회계정보를 재무제표의 형태로 제공하는 데 있다(보고목적). 특히 회계는 투자자·채권자 등 정보 이용자들의 투자의사결정이나 신용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의 현금흐름 전망을 평가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며, 기업의 경제적 자원과 이에 대한 청구권 및 이들의 변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회계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데 중추적 근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회계자료는 합리적·보편적 기준에 따라 공정하고 엄정하게 작성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 등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이 무너져 아노미(anomie)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회계처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분식회계(粉飾會計)는 철저히 차단돼야 한다. 분식회계는 일반 재산범죄(절도죄, 강도죄 등)에 비해 위법성이 훨씬 크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뻥튀기 조작 등 숫자놀음으로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불로수익을 취하게 된다.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둔갑(遁甲)시켜 회계정보를 믿고 경제행위를 한 불특정 다수인에게 큰 손해를 입히게 되므로 수백 만 내지 수천만 원 정도의 개인적 재산법익을 침해하는 절도, 강도 등의 범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감독이 소홀했고, 외부감사인의 회계감사도 느슨하게 이뤄져 왔다. 특히 삼일·삼정·안진 등 유력 회계법인들이 분식회계를 공모·조력한다는 의심마저 받는다. 분식회계를 저지르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형법, 특경가법 등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데,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분식회계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비영리법인 등에서도 ‘별 죄의식 없이’ 관행처럼 이뤄지는 사례들이 많다. 분식회계의 종국적인 피해자는 국민이다. 분식회계를 차단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특단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분식회계를 방치하는 것은 고속도로에 생긴 다수의 대형 싱크홀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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