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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지난 12월 15일 밤, 하노이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이 말레이시아를 1-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자 베트남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환호가 이어졌다.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수많은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에 나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것처럼 베트남 전역도 들끓었다고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베트남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박항서 감독이 있다.

 10년 만에 베트남에게 스즈키컵 우승을 안긴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있다. 우승 축하금으로 받은 10만 달러 전액과 목에 건 자신의 금메달까지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베트남 축구협회에 기부했다는 박항서 감독은 매우 독특한 사람인 모양이다.

 박 감독은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4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던 사람이다. 그러나 2002년 이후에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실업축구팀 감독에서도 밀려난 바 있던 그가 베트남 지휘봉을 잡으면서 ‘박항서 매직’의 주인공이 됐다. 박항서 감독이 만들어 낸 놀라운 성과는 ‘한국 외교관 100명’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크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한 언론의 보도를 살펴보면 박 감독이 베트남 현지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이 ‘파파(papa) 리더십’ 때문이라고 한다. 경기를 끝낸 선수들에게 마사지를 직접 해주거나 경기에 패해 기가 죽은 선수들에게 질책 대신 최선을 다했다며 격려하는 모습들이 마치 축구 선수 아들을 둔 아빠 같은 모습이라며 책에도 나오지 않는 ‘파파(papa) 리더십’이란 재미있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60세 가까운 나이에 베트남에서 선수들을 자식같이 챙기는 따뜻함으로 성공을 만들어 낸 박항서 감독의 이야기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 베트남에서 박 감독을 옆에서 지켜봤다는 한 인사는 ‘그는 냉철한 용장(勇將)이라기보다는 푸근한 덕장(德璋)이며,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도 어느 위치에 필요한지를 고민했던 지장(智將)’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또 ‘스타플레이어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함께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건 축구든 기업이든 마찬가지’라며 ‘함께’라는 의미를 가장 중요하게 보는 박항서 리더십을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박항서 열풍은 지난 2002년 당시 수많은 대기업과 경제연구소에서 히딩크의 리더십을 경영에 적용해야 한다며 내놓았던 철저한 능력 위주 인재 선발이나 과학적 경기 분석과 같은 이성적 리더십과 크게 대비되기도 해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외 사정이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대통령은 ‘상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고 허공에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정치권에서조차 연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내세우며 날선 공방들만 이어 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상생’이란 있을 리 없다.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해 금방 들통이 날 거짓 정보로 국민 편 가르기를 일삼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에게 ‘상생’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청와대 앞에서 피켓을 든 태안화력발전소 고(故) 김용균 씨 동료들, ‘카풀 서비스가 시작되면 밥숟가락 놓아야 한다’며 거리를 가득 메운 택시 기사들, 그리고 400일이 넘도록 철탑에 올라가 고공 시위를 하고 있는 근로자들과 고용주 사이에도 ‘상생’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이 나온다. 함께 사는 화합의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인데 ‘상생(相生)’이란 말은 바로 이 말에서 나왔다. 많은 미래학자와 동양사상가들은 ‘상생’이 21세기 인류를 이끌 지침이 될 것이며 갈등과 대립을 화합으로 전환시킬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선수들을 자식같이 챙기는 따뜻함으로 ‘파파 리더십’을 보여주며 ‘박항서 매직’을 만들어 낸 ‘상생 축구’가 모두를 놀라게 하고 깊은 감동을 준 것처럼 사회 각계각층이 ‘상생’을 실천하며 늘 함께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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