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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 뚝심 지킨 가게들…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보다

[노포에서 인천 산업화 흔적을 찾다]<프롤로그>가업을 잇는 사람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2019년 01월 11일 금요일 제1면

한국전쟁은 인천을 폐허로 만들었다. 전쟁통에 도심 곳곳은 성한 데가 없었다. 그런 인천에 새싹이 돋는다. 1960년대 들어서다. 서서히 사람이 살 만한 동네로 변모한다.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기폭제가 됐다. 이 계획으로 국가산업단지가 하나둘 조성되면서 인천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한다.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고, 서민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지역에 사람이 많아지니 각양각색의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흐른 지금, 도심의 상전벽해(桑田碧海) 속에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곳이 있다. 다름아닌 ‘노포(老鋪·오래된 가게)’다. 이곳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본보는 ‘노포’ 기획을 통해 과거 인천의 산업화 과정을 살펴보고, 동시에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며 현재 힘겹게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소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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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달 28일까지 진행되는 인천도시역사관 기획특별전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 전시장. <기호일보 DB>

# 1970년 이전에 개업한 노포는 총 69곳… 가장 오래된 곳은 동구 중앙치과

 인천은 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 근대도시로 성장했다. 외국 상인과 거래하기 위해 하나둘 모여든 물상객주(物商客主)들은 조계지(租界地) 인근에 상점을 차렸다. 조선인과 외국인들에게 생필품을 조달했던 점포도 생겨났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황폐해졌던 것도 잠시다. 도시는 발전을 거듭했고, 상점은 계속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경인고속도로 개통과 주안공단 조성, 주안신시가지 개발 등으로 인천 인구는 1960년 40만여 명에서 1970년 64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인구 팽창과 도심 확대로 상점 수 역시 크게 늘었다. 통계연보에 따르면 1960년 4천여 곳이었던 인천지역 상점은 10년 뒤인 1970년 6천700여 곳으로 증가했다. 2016년 현재 개인 상점은 3만9천200여 곳에 달한다. 50여 년 만에 10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인천도시역사관이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진행한 노포 관련 기초조사와 심층조사 결과, 1970년 이전에 개업해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지역의 노포는 총 69곳이었다.

 지역별로는 중구가 30곳으로 가장 많았고 동구와 강화군이 각각 12곳으로 뒤를 이었다. 부평구 9곳, 미추홀구는 4곳이었다. 1980년 이후 신도시로 개발된 남동구와 연수구는 각각 1곳씩 노포가 있었고, 서구와 계양구는 한 곳도 없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 38곳, 음식점업 19곳, 서비스업 6곳, 보건업 6곳 등으로 도소매와 음식점이 가장 많았다. 도소매업 중에서는 식료품(13곳)과 의류(8곳), 문구용품(5곳) 상점이 많았다. 음식점 중에서는 한식이 14곳으로 가장 많았고 중식(4곳), 양식(1곳) 순이었다.

▲ 인천도시역사관 기획특별전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에 전시된 노포 ‘신신옥’, ‘경인면옥’에서 쓰던 물건.
 창업 시기로 보면 1934년 문을 연 동구 중앙치과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로 조사됐고, 1960년대(38곳)가 창업한 가게가 가장 많은 시기로 꼽혔다. 이 중 특히 가업을 잇고 있는 상점은 53곳으로 3대 이상 이어지고 있는 곳도 14곳이나 됐다. 승계 형태는 가족 승계가 48곳이었고, 종업원이나 지인이 가게를 물려받은 곳은 5곳이었다.

# 노포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인간의 삶

 인천지역 곳곳에 자리잡은 노포는 ▶평양옥 ▶경인면옥 ▶삼강설렁탕 ▶춘천식당 ▶신일복집 ▶풍미 ▶신신옥 ▶송미옥 ▶우순임주꾸미가게 ▶호구포식당 등 인천을 대표하는 오래된 음식점과 ▶의흥덕양화점 ▶신라라사 ▶도성양복점 등 의류·제화점, ▶대동학생백화점 ▶칠성문구사 ▶남창문구사 등 문구용품점과 ▶성광방앗간 ▶성신카메라 ▶문학이용원 ▶청학풀장 등이 있다.

 이처럼 도시 곳곳을 채운 상점은 과거 도시 인천의 역사와 현재 도시 인천의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천사람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고 있다.

 중구 신흥동에 위치한 ‘평양옥’은 1대 사장인 김석하·조선옥 부부가 만주를 떠나 인천에 정착해 상 몇 개를 놓고 장사한 것이 시작이다. 이들은 한국전쟁으로 가게를 떠났지만 다행히 전쟁에도 가게가 무사해 다시 장사할 수 있었다. 평양옥은 국밥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대표 메뉴는 해장국이다. 평양옥은 3대째 운영되고 있으며, 손자인 김명천 사장은 직접 요리와 운영을 도맡아 하는 것을 평양옥의 운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 조오다 사진작가가 찍은 노포의 모습. <조오다 사진작가 제공>
 동구 송림동에 위치한 ‘중앙치과’의 창업자는 이시찬 원장이다. 그는 경성제국대학에서 의학부를 졸업해 인천에서 중앙의원을 개원했다. 이 원장의 아들 2대 이익원 원장은 보건소장으로 활동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1968년 중앙치과를 이어받았다. 3대 이창수 원장은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치과의사의 길을 걷게 됐고, 아버지 이익원 원장이 타계한 2000년부터 중앙치과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문학이용원’은 광복 직후였던 1945년 박경산 사장이 미추홀구 문학동에 문을 연 이발관이다. 아들인 2대 박문용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도우면서 이용기술을 배웠다. 그는 1964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게를 이어받았다. 예전에는 문학동에 이발관이 많지 않아 온 동네 주민들이 고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오랜 단골손님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 인천도시역사관 기획특별전 ‘오래된 가게, 인천 노포’를 찾은 노포 ‘성광방앗간’ 이종복 사장.
 연수구 청학동에 위치한 ‘청학풀장’의 창업주인 김세훈 사장은 군대를 제대하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다가 100원에 물 한 바가지를 끼얹는 냉탕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그는 조부가 1957년 조성해 사용하던 여름별장을 청학풀장으로 바꿔 개장했다. 그는 현재 인천시에 영업장을 매각하고 위탁 형태로 풀장을 운영하고 있다. 일흔의 나이에도 새벽에 일어나 수영장 물을 받으며 뚝심으로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다.

 노포 조사를 기획한 우석훈 인천도시역사관 학예연구사는 "막상 오래된 가게를 조사하면서 보니 상점주들은 자부심과 긍지보다는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다"며 "이번 기획을 통해 도시 인천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오래된 가게를 힘겹게 이어오고 있는 상점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자료=인천도시역사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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