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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차나 마시고 가게"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2월 15일 금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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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참 시끄러운 세상입니다. 곳곳에서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그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들은 과거의 일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으니 참 딱합니다.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 시점은 ‘현재’이지만 그들의 다툼은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잠시 멈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잠시 멈추어야 비로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주 스님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자신을 찾아온 젊은 스님에게 "예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젊은 스님이 답했습니다. "예, 왔었습니다." 이에 큰스님은 편안한 목소리로 "그렇구먼. 그럼 차나 마시고 가게"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다른 젊은 스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고 말하자, 큰스님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차나 마시고 가게."

 조주 스님이 계시는 절에 살림을 도맡아 보던 원주 스님이 물었습니다.

 "스님, 어찌하여 이 절에 왔던 스님에게도 차나 마시라 하시고, 와보지 않은 스님에게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

 물끄러미 원주를 바라보시더니 큰스님이 입을 뗐습니다.

 "원주야, 너도 차나 마시고 가거라."

 조주 스님의 ‘차나 마시고 가라’는 화두 속에는 어떤 가르침이 숨어 있을까요. 저는 이른 새벽 늘 연구실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확인하곤 합니다. 제가 차를 마시는 것은 건강한 하루의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같습니다. 아직도 잠이 덜 깬 상태가 뜨거운 차 한 잔으로 인해 완전히 깨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유명한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그분이 평생 찾아온 깨달음의 진리를 재빨리 배우겠다는 젊은 스님들로서는 조급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때 그는 깨달음의 말씀이 아니라 차 한 잔을 줍니다. 조급함에서 벗어나 차를 마시면서 평온한 마음을 찾아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조급해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동안 멈춤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과거’에서 벗어나 올바른 ‘현재’를 살아갈 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가꾸어주는 작은 이야기」라는 책에 스승과 제자의 대화가 나옵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제자가 스승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얼마 전 열린 전람회에 제 작품을 출품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그렸기 때문에 입상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그만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심사위원들이 그림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이론만 알았지 실제로 그림을 그려본 사람들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 작품이 떨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 말을 조용히 경청하던 스승이 입을 뗍니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일이구먼. 그런데 말이야. 만약 평생 그림이라고는 한 장도 그려보지 못한 사람이 심사위원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달걀을 낳아본 적이 없지만, 어떤 달걀이 싱싱한 것인지는 가려낼 줄 알지. 그러니 어떤 심사위원이 보더라도 뽑힐 만한 그런 그림을 그리도록 더 노력해보게."

 제자는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을 겁니다. 그러니 낙선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심사위원들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조주 스님처럼 차 한 잔 마시는 ‘멈춤’의 지혜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때 ‘네 탓’이라는 ‘과거’의 늪에서 ‘내 탓’이라는 ‘현재’의 자신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 자체가 ‘본질’이고, 전람회 출품은 단지 본질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차 한 잔 마시는 멈춤의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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