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3일(현지시간)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펴내며 북한을 향해 강온 메시지를 동시에 던졌다.

미국이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가 전날 북한의 제재위반 사례를 담은 연례보고서를 펴낸지 하루만에 발간한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다.

'아킬레스건'인 북한 인권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수위는 전년에 비해 한층 누그러뜨림으로써 북한의 태도변화를 견인해내려는 전략적 포석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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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March 13, 2019. (AP Photo/Jose Luis Magana)
북한이 가장 아파할 두 가지 카드인 제재와 인권 문제를 연달아 '쌍끌이'로 꺼내들며 '포스트 하노이' 국면에서 북한을 향한 압박에 나서면서도 '죄고 풀기'식 강온 병행을 통해 북한과의 밀당을 연출하고 있는 느낌이다. 제재의 고삐는 다시 한번 조이면서도 인권 대응을 놓고는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모양새다.

두 보고서 모두 해마다 발간되는 것으로 올해도 예정된 시기에 공개됐다. 하지만 공교롭게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귀결된 뒤 북미가 '단계적 비핵화론'과 '일괄타결식 빅딜론'을 놓고 긴장도를 높이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그 '함의'에 더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의 파장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향해 '맞불'성 경고의 사인을 보낸 것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12일 유엔의 북한 제재위반 연례보고서 발간 직후 국무부 논평 등을 통해 환영 입장을 밝혔던 미국은 14일에는 실무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특별대표를 유엔 안보리에 급파, '제재 행보'를 이어간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하면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가 이뤄질 때까지 안보리의 대북 제재의 전면적 이행을 촉구, 대북 제재 전선의 이탈 방지를 막기 위한 단속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은 이번 인권보고서에서 지난해보다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수위조절에 나서며 유화적 제스쳐도 함께 발신했다.

하노이 핵 담판이 합의문 채택 없이 결렬되긴 했지만, 후속 협상을 염두에 두고 북한에 대한 과도한 자극은 자제,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유화 제스처를 동시에 타전하는 강온 조절을 통해 후속 협상 국면에 대비한 '밀당'에 나선 모양새가 연출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년도인 2017 보고서에 포함됐던 "북한 주민들이 지독한 인권침해에 직면했다"는 표현이 이번 2018 보고서에서는 빠진 게 단적인 예이다.

마이클 코작 국무부 인권담당 대사가 일문일답에서 '지독한'이라는 표현이 빠진 이유와 관련, 보고서에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나열돼 있음을 거론하며 "함축적으로 북한은 지독하다는 것"이라고 해명하긴 했지만, 북한 정권의 책임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가 삭제되는 등 전반적으로 '톤다운'이 이뤄진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국무부가 이번 보고서에서 이란과 중국 등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해 강도 높게 맹비난한 것과 확연하게 대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인권보고서 서문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발전시킨다면 그들의 전력과 상관없이 다른 정부들과 관여하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식과 연계해 바라보는 시각도 고개를 들었다.

AFP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과 이란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난하면서 비핵화 협상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 등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미국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봐주기에 나섰다"며 '지독한'이라는 표현이 빠진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 침해국이라고 간주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인권침해에 대해 좀처럼 거론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블룸버그 통신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적성국에 대한 인권 문제 제기에 집중해왔다"며 인권 문제에 대한 이중잣대 논란을 제기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 협상을 진행해오는 과정에서 미 조야 일각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눈 감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인권유린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비핵화 협상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인데 따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확대 양자 회담을 시작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인권도 논의하고 있느냐'는 기자 질문이 김 위원장을 향해 나오자 "모든 걸 다 논의하고 있다"고 대신 답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분간 압박과 대화 기조라는 강온 병행을 투트랙으로 이어가며 '플러스알파(+α)'에 해당하는 북한의 비핵화 결단 견인에 주력, 후속 회담이 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추가 행동에 대한 북한의 결심 없이는 후속 대화 테이블이 열리더라도 또다시 '빈손'이 재연될 수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동창리 파문'에 대해 당장 추가로 말할 게 없다며 언급을 아끼며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전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비핵화 협상이 '울퉁불퉁하고 먼 길'이 될 것이라면서도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원한다는데,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걸으려고 한 다는데에 계속 낙관적"이라며 긍정적 전망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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