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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전오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3월 하순에 접어들으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능수버들의 긴 가지마다 새순이 돋아 소녀의 긴 머리카락처럼 흔들린다. 발밑으로는 갓 자란 쑥이 봄을 알리고 조팝나무는 조만간 흰꽃을 터뜨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듯하다.

 지난 겨우내내 심곡천변을 지켰던 갈대가 3월 초순 어느 날부터는 눈에 띄게 쓰러져 버렸다. 지난 가을에 내 키보다 크게 자란 갈대잎들이 갈색빛으로 변하고서는 겨우내내 하천이 황량하고 쓸쓸하지 않게 지켰었는데, 봄이 되면서 쓰러져 누운 모양이다. 누군가가 하천 변에 있는 갈대를 베어낸 것도 아닌데 갈대뿐 아니라 쑥대 등 대부분의 풀들이 쓰러져 하천을 활짝 열어 버린 느낌이 났다.

 왜일까? 겨우내내 하천을 지키던 갈대며, 쑥이며, 풀들이 봄이 되면 쓰러지는 것일까?

 다년생 풀들의 뿌리는 수년을 살지만 땅 위에서 자라는 부분은 매년 새로 자라고 갈색으로 물들고, 쓰러지고 다시 새순을 낸다. 지난해에 무성했던 풀잎들이 봄이 돼서도 꿋꿋하게 서 있으면 새순이 자라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새순이 자라기 위해서는 하늘이 열려 햇볕이 들고 신선한 바람이 통해야 할 텐데, 자연의 매커니즘은 봄이 되면 묵은 풀잎들을 쓰러뜨려 새순들이 자랄 길을 열어주도록 설계돼 있는 것 같다. 묵은 풀잎들의 세포들은 봄이 돼 온도가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지면 죽은 세포조직이기 때문에 이완돼 바람이 불면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묵은 갈대잎과 쑥대가 쓰러진 자리에 아직 새순이 본격적으로 돋아나지 않고 있는 3월 하순 어느 날이다. 자연은 이렇듯 새봄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봄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

 지난 겨우내내, 아니면 그 전부터 우리는 갈대밭에 왜 이리도 많고도 다양한 쓰레기를 버렸는지! 하천 변은 온통 쓰레기 투성이다.

 갈대가 쓰러진 자리에 쓰레기들이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인다.

 자연은 낡은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지금, 하천 변에 널려있는 이 많은 쓰레기를 과연 어찌해야 할까? 한두 번 치워 깨끗해진다면 주말에 혼자라도 나서보겠지만 혼자 힘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 불평만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다.

 어떤 사회에서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은 소수인데 그 중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실천에 옮겨 성공하는 사람은 2%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어떤 강연에서 들은 바 있다. 공공장소에서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평만 한다. 그리고 극히 일부만이 직접 행동으로 나선다.

 되짚어 보면 하천에만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이 아니다. 산에서, 하천으로 그리고 바다까지 우리가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투덜대고는 잊어 버린다.

 봄이 왔다. 우리 어릴 때처럼 모두 함께 빗자루와 짚게를 들고 거리로 나와 산, 하천, 바다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그때는 의무적으로 동원되는 느낌이 많아 싫었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 빗자루와 집게를 들면 어떨까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물의 날이며, 지구의 날이며, 바다의 날이며, 환경의 날 등 각종 환경 관련 기념일이 많이 있다. 봄맞이 행사가 조금 늦더라도 이런 날들을 활용해 함께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했으면 좋겠다.

 심곡천 상류는 폭은 좁지만 흰뺨검둥오리 수십 마리가 살고 있다. 봄이 돼 부리 색이 더 노랗게 변하고 있는데 조만간 짝짓기도 하고 예쁜 새끼들도 낳을 것이다. 심곡천에 사는 오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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