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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팽배해 있는 갈등현상 때문일까?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의미의 ‘혐오(嫌惡)’라는 말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젠 혐오만으로는 부족한지 ‘극도로 혐오스럽다’라는 말을 줄인 ‘극혐(極嫌)’이란 말까지 만들어 내고 아예 일상어처럼 쓰고 있다. 혐오 또는 극혐의 대상은 다양하다. 특정 종교인이나 난민, 이념이 다른 그룹, 노년층과 다른 젠더(gender)를 극혐의 대상으로 삼고 비난을 쏟아 내거나 심지어는 가깝게 지내던 사람을 비난할 때도 쓰인다.

 어떤 학자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확산되게 된 본질적인 원인을 정쟁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정치집단 간 갈등이 있을 때, 상대 정당의 지지자들을 공격하거나 그 정당의 정책으로 혜택을 보는 집단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간(這間)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은 차치하고서라도 욱일기(旭日旗)를 앞세우고 혐한(嫌韓)을 부추기는 일본 극우세력들을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혐오를 반복하는데 적합한 수단을 제공하는 미디어 환경 탓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유튜브를 통한 1인 미디어가 늘고 온라인, 오프라인 언론사가 수없이 늘어나면서 무분별한 혐오성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혐오성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해서 그럴 경우도 있겠지만 집단행동에 휩쓸려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남의 말을 듣고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영화배우 김의성이란 사람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는 착한 이미지보다는 악한 이미지가 더 강하다. 얼마 전 방영됐던 ‘미스터 선 샤인’이라는 방송 드라마에서도 악질 친일 매국 인사로 등장했던 그였다. 그러나 화면 밖에서의 행적을 보면 영화나 드라마 속의 배역과는 사뭇 다른 사람일 뿐더러 연예인에 대한 나의 오랜 고정관념(固定觀念)이 편견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줬다.

 배우라는 공인임에도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당당히 표현하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에는 1인 시위에까지 나서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에 자동차를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일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으로 지목돼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배우 김의성 씨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집단 괴롭힘의 모습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혐오성 사건들을 심각한 사회현상이라고 말한다.

 혐오는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무기이지만 손잡이가 없는 칼이라고도 표현했다.

 혐오라는 칼로 남을 더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크지만 정작 손잡이가 없다 보니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다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또 부의 양극화와 세대 간 갈등, 남녀 갈등 등 혐오를 유발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그냥 방치하면 앞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젠 서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하며, 자신과 같은 유명인들이 앞장서서 ‘잘 살자!’보다는 ‘같이 살자!’고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사회적 발언을 하면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따르곤 하는데 사람은 겉으로라도 선한 마음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말은 더 아름답게, 생각은 좀 더 높게,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은 말이나 사회적 약속을 하면 그 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작은 실천이라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춘분이 지나면서 남녘으로부터 봄소식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올해 경인 지역의 봄꽃은 작년보다 2∼3일 빨리 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우리 가까이에는 함께 맞이해야 할 봄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한겨울처럼 외롭고 춥게 지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봄날, 사랑의 기도’라는 시(詩)에서 함께 맞이해야 할 봄을 이렇게 노래한다.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맞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을 위해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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