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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성공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서 나온다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3월 28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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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조선의 세종 임금은 동북아 역사에서 단연 손꼽을 수 있는 명군 가운데 명군이다. 당나라 태종이나 청나라 강희제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재들의 의견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경청화법이 뛰어났다. 당태종이 간관(諫官)이었던 위징과의 대화에서 "폐하, 제게 충신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에 "어찌 충신이 싫단 말인가?" 하면서 까닭을 묻는 대목이 있고, 강희제는 정년퇴임하는 노재상에게 "그대는 좋겠다. 짐은 백성들이 굶어 죽을까 얼어 죽을까 노심초사하는데 한적한 시골에서 아무 걱정 없이 소일할 수 있으니…"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

 당태종과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2대 명군으로 꼽힌다. 당송 8대가니 4대 미녀니 8대 명주니 하면서 열손가락 이내의 숫자로 평가·선정 기리기를 즐기는 그들이 4천 년 역사에서 명군은 딱 둘만 꼽았으니 뛰어난 점이 꽤 많았음은 분명하다.

 "의창의 문제점은 이것저것 다 말하면서 어째서 그 문제를 해결할 적절할 방도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가"라고 세종이 조정회의에서 대신들에게 묻는 구절이 실록에 나온다. 의창(義倉)이란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줬다가 추수 때 이자를 붙여 거둬들이는 빈민구제(요즘 복지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겠다) 기관이었다. 이 제도에 대해 일본인들이 "우리도 조선에서 태어났더라면 의창의 혜택을 볼 수 있었을 텐데"라며 부러워했다는 그 의창이었다. 하지만 흉년이 연이어 계속되면 저장량이 크게 줄어 빌려주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백성들의 지나친 의존적 행태였다. 추수를 하고 나서 "무슨 친목모임이다, 계모임이다, 부처 공양이다 등등 이유로 곡식을 낭비하고는 내년에 파종할 씨앗은 의창에서 빌리면 된다. 무슨 걱정인가" 하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빌려간 곡식과 이자를 갚지 못하는 백성들이 늘어났고 결국 지방의 수령들이 이들 백성을 불러다 모질고 독하게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조정 대신들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세종 면전에서 이점을 조목조목 세부적으로 아뢰었고, 해법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최선을 다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등등으로 끝맺었다.

 세종은 그런 신하들을 탓하지 않고 "나 자신이 크게 부끄럽다", "백성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나도 깊이 생각해보았으나 그 요령을 얻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신하들의 조언을 절실히 청했던 것이다. 이 덕분에 수많은 관리들이 앞다퉈 해법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서 돋보이는 제도가 사창(社倉)이다. 사창은 관곡을 기반으로 하되 주민의 출자(出資)가 보태졌다. 전적으로 관청에 의존해 운용되는 의창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한 사창의 운용과 관리에 지역의 명망 있는 인사와 주민들이 참여함으로써 고을 수령이 전담하는 의창과 달랐다. 결과적으로 사창 제도는 ‘빈민을 구제하는 일은 국고(國庫)를 다 털어 베풀지라도 해결되기 어려운 일이며 백성의 자발성이 있어야 제대로 베풀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리하여 대구 지역에서 시범 실시되었고, "백성들 대다수가 이롭게 여긴다"는 현지 보고에 따라 경상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됐고, 임진왜란 이전까지 의창, 상평창과 더불어 전문적인 빈민구제 제도로 정착됐다.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간 농촌에 찾아가 "이놈들아, 왜 백성의 식량을 빼앗느냐. 차라리 내 오장육부를 먹지"라며 메뚜기를 삼킨 당태종, "백성이 굶어 죽을 까봐 밤잠을 설친다"며 울먹였던 강희제보다 세종의 일처리 방식은 훨씬 합리적이고 실용적 인재들의 해법을 구하는 뛰어난 리더십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에너지 정책, 북한의 비핵화와 교류, 미세먼지, 유치원 교육 등 각종 정책적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전문가들의 고견(?)과 공무원들의 진단(?)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정치적인 풍향에 따라 움직이는 전문가와 공무원은 진정한 해법을 내놓을 수가 없다. 내놓았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의 제기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연목구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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