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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한 서생이 보는 우리 상고사

김락기 시조시인/객원논설위원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4월 10일 수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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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20년 만에 다시 읽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 등을 본 후 ‘한미한 서생의 손으로는 성취하지 못할 사료’라고 했다. 이 ‘한미한 서생’을 따서 글 제목의 앞부분으로 삼는다.

 대사학자의 말씀을 차용해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천학을 달래본다고나 할까. 학창시절 ‘국사’는 사법시험 2차 과목이어서 어떤 책은 필독 수험서로 읽혀졌다.

 게서 남은 거라면 우리 역사는 기원전 108년 한강 이북 땅 한반도에 한4군의 지배로부터 시작됐다는 내용이다. 이는 내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우리나라는 토끼 모양이며, 모래알 같은 민족이라고 한 말씀과 같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외세 지배로부터 비롯된 약소민족―2가지 의문이 남았다. 첫째, 철저한 근거사료에 의한 객관적 사실인가. 둘째, 누가 자국 역사를 외세 지배로부터 시작됐다고 가르칠까였다.

 틈나는 대로 한국사 중에서도 고대사·상고사에 관한 서적이나 강연, 신문, 방송 같은 저널리즘을 접했다. 단재의 조선상고사는 그 간난한 일정치하에 한겨레의 넋을 살리고자 조선일보에 연재한 것만으로도 범상치 않다.

 기원전 108년 이전의 고조선은 지금 중국 동북3성이 포함된 광대한 강역이었다든지, 3조선 단군의 역할, 고구려·백제·신라의 중국 요서·북경, 산동·강소·절강·복건·감숙성이나 일본 같은 해외경략설 따위는 강단사학에서 배우지 못한 거였다.

 그의 학설이 다 수긍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중 두 나라의 사서·금석문·잡록·답사유적 등 방대한 근거사료와 이두문 해석 같은 해박한 지식에 의한 서술은 한국 상고사의 학해라 할 만하다.

 또한 지나(중국)의 춘추필법에 따른 사마천의 사기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잘못되고 모호한 기록을 비판한 것은 새로웠다. 마침 선생이 살았던 서울 삼청동 집터가 발견돼 표지석을 설치한다고 한다.

 유족의 뜻에 따라 그의 숭고한 얼을 되살릴 기념관도 빨리 건립되기 바란다. 1986년에 접한 윤내현의 「한국고대사신론」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국내 사료가 빈약해 미국 하버드대에 연구차 머물 때, 거기 소장된 중국 사서에서 뽑은 고조선에 관한 내용을 기초로 하여 편찬된 책으로 알고 있다. 그는 기존의 한국고대사 체계가 완전히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확인과 거기에 산재해 있는 오류는 사대사관과 식민사관의 영향 때문이라는 논의도 있어 왔다고 했다.

 그해 11월부터 ‘새로 써야 한다-민족의 고향 고조선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연재도 했다. 법학자였던 최태영 선생은 강단에서 우리 역사를 일본이 만든 그대로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놀라, 고희도 넘은 나이에 상고사 복원에 뜻을 두고 연구를 거듭해 2005년 105세로 별세할 때까지 여러 권의 관련 서적을 발간했다.

 특히 「한국상고사입문」은 식민사학자로 알려진 이병도를 설득해 공저로 낸 책이다. 거기에 고조선은 강대한 광역국가였으며,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인물로서 47대를 이었다고 돼 있다.

 3인의 대체적 견해는 한4군의 위치는 중국 요서 지역께이며 단재는 그것도 실현된 것이 아니라 했고, 고조선은 강성대국이었다는 것이다.

 한반도가 토끼 모양이라는 것은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한민족을 폄하하려고 1903년 한반도 지질구조도 발표 때 한 말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한민족과 애환을 함께해 왔으며, 한반도는 호랑이 모양이라고 한다. 작금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상고사를 강탈하고,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며 초등학교 교재에 수록하는 흉계를 드러냈다.

 총성 없는 역사전쟁이다. 이런 역사왜곡에 대해 정부는 학술적 조사연구 및 대응전략 개발을 위해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했다. 한데, 그 단체가 작년 동북공정에 화응하는 매국 식민지도를 제작했다 하여 되레 해체 요구를 받고 있다.

 강단사학계의 상고사관은 한 세대 전이나 요즘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반만년 전 중국 요령성 홍산문화의 주역은 누구인가. 지금은 5G 통신 정보의 홍수시대, 누구든 보다 쉬이 사료를 접할 수 있다.

 사학은 이제 역사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단재와 위당 선생이 살아 있었다면 이리 되었을까.

 저 하늘의 최태영 선생이 애통해할지도 모르겠다. 봄꽃길, 서사시조 한 수 바친다.

 # 아, 단군조선
 
 모르면 신화인가
 알고 나면 사화(史話)인데
 
 홍산에 핀 유적들은
 동이족의 그리메라
 
 다물이
 다 물리고픈 곳
 반만년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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