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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와 고갱이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4월 12일 금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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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2019년도 벌써 4월로 접어들었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고 봄 향기를 고양이 같다고도 했다. 겨울을 막 지난 뒤라 아직은 황무지 같은 대지에 서면 얇아진 속옷에 스며드는 봄바람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고양이 털처럼 부드러운 햇살에 만물이 소생하니 그 생명력을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통해 공감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생명을 길러주었다…."

 하지만 신동엽 시인의 사회 참여 인식은, 4월에 이르면 마침내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으로 분출된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그 껍데기는 가짜, 거짓, 위선, 불의, 참된 민족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 민족과 국토의 통일을 방해하는 것, 민족을 파멸로 이끄는 외세와 전쟁 등으로 유추된다.

 이렇게 4월이 되면 지루했던 겨울의 움츠림을 벗어나 기지개를 켜듯 어김없이 가슴속에 떠오르는 상징어가 ‘황무지’와 ‘껍데기는 가라’로 대표되는 것 같다. 1922년 발표된 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전쟁과 전쟁을 낳은 현대문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망가뜨렸는지를 읊은 시로 알려져 있다. ‘황무지’란 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모습이지만 더 멀리는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인류가 추구해 온 현대기술문명 자체를 가리킨다고 평가된다.

 우리 역사에서도 4월은 어느 때보다 역사적 항쟁과 사건이 많았던 달이다. 100년 전 1919년 4월 2일은 인천의 만국공원(자유공원)에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3도 대표자회의 개최가 시도됐고, 이 일을 계기로 4월 23일 한성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됐다. 여기에 4월 11일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됐고, 이후 노령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로 통합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된 것이 한성임시정부였다. 125년 전 고부 농민 봉기에서 시작된 갑오농민전쟁(1894)도 4월 치열한 농민군들의 항쟁으로 전주성에 입성하고(4월 27일) 전주화약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70여 년 전 제주도에서는 4·3항쟁이 있었고(1948), 60여 년 전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외침은 4·19혁명으로 표출됐다(1960).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나 사업을 펼치면서 종종 ‘역사의 이름으로’ 역사에 빗대어 많은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삶의 미래 방향과 역사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재활용, 재생이라는 단어가 시대적 추세인 것 같은 지금에 여기저기서 역사를 재해석한다. 문화유산을 재생하고 재생산하면서 내놓은 논리가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들을 접할 때 ‘껍데기’와 ‘고갱이’는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

 과거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자료를 근거로 논리를 밝혀 확인하고 학계의 발표를 통해 학술지에 실리게 되면서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다.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를 탐색하고 실시간 빠른 속도로 자료를 찾다 보니 다양한 견해를 제각각 편리대로 올리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호도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가짜뉴스’가 버젓이 인터넷을 떠돌고 진실이 아닌 일들이 유튜브 영상으로도 옮겨져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역사가의 영역에서 다뤄지던 역사 해석도 여론을 통해 정리되는 시대가 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역사가와 비역사가의 차이는 무엇인가? 비역사가가 직관적 판단을 통해 사건을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역사가는 오랫동안 그 방면의 많은 자료들을 찾고 여러 사례를 비교·검토하면서 역사 해석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역사 해석에도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시대 역사의 ‘고갱이’는 어디서 구해야 할 것인지? 4월에는 시인이 절규하듯 외치고 싶다.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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