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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지망생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2019년 05월 07일 화요일 제10면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을 전공한 대학생들 중에는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글쟁이’ 지망생들이 많다.

 반면 전통적으로나 현상적으로나 공과대학 쪽에서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경상계열은 그 중간쯤 되겠다.

 글쓰기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몸에 맞는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일을 할 때 존재의 이유나 존재의 희열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글을 쓸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들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소설가나 시인(詩人), 영화나 방송 작가의 삶을 택함으로써 실천하기도 한다.

 그런데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직업군 중에는 기자(記者)도 있다. 하지만 기자가 기사를 쓸 때 동종업계에는 ‘글을 쓴다’라고 일컫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기사를 쓴다’고 표현될 뿐이다. 기록할 기(記)와 놈 자(者)로 구성된 기자는 365일 세상 곳곳에서 시시각각 벌어지는 일들을 1천∼2천 자 내외로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직업군이다.

 가공된 인물과 배경을 토대로 새롭게 조합된 세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아 내는 소설과는 차이가 크다. 그래서 최악의 기사에 대해서는 ‘소설을 쓴다’라는 비판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암묵적으로 또 공공연하게 기사는 소설과 완전한 대척(對蹠)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글쓰기를 곧잘 하는 인문·사회계열 작가 지망생들은 기자를 직업으로 택할 때 여러모로 신중해야 한다.

 현실과 부합되는 소설의 구동원리인 인물의 전형성과 사건의 개연성이 하나의 기사에서 제 아무리 완벽하게 구현되더라고 하더라도 지망생들의 번뜩이는 상상력은 단 하나도 허용될 수가 없어서다.

 마찬가지로 정치인, 공무원, 사업가, 근로자, 시민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 구성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자의 고유한 권한’을 자신에게 맞게 이용하려는 기자 지망생들도 직업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정치에 입문하려는 루트로 기자직을 활용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기 전 인맥과 경험을 쌓기 위한 도구로 기자직을 이용한다면 그 사심(私心이 기사에 녹아 있기 마련이다. 이는 언론계의 혼탁과 교란을 불러 올 뿐이다. 본업에만 충실할 수 있는 지망생들을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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