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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호주군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에 다녀와서

김성기 가평군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5월 16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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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기 가평군수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 이륙을 시작할 때는 창공을 향한 상쾌함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새로운 지평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호주는 이민 1세대에게 미지의 대륙이자 희망의 땅이었고 현재 한국인에게는 혈맹이자 각광받는 관광지이다.

바쁜 군정을 잠시 내려놓고 호주군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을 위해 멜버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멜버른 해변의 굽이치는 파도와 하얀 포말, 물비린내 없는 향긋한 바다내음이 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호주군과 호주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가평이라는 지명을 아주 중요시하는데 멜버른 해변에 우두커니 서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본인은 5월 초순 호주 멜버른 마리부농시 쿼리파크에서 거행된 호주군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에 참석했는데 그것은 참전비 건립에 가평석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호주 국민과 군인들은 가평석에 열광하는가? 호주군 한국전 참전용사와 국군 한국전 참전유공자, 교민 등 250명의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본인은 축사를 통해 가평전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가평전투는 호주군 역사상 가장 대승을 거둔 전투입니다. 가평전투는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중공군 춘계 대공세 때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로 구성된 영연방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이 가평계곡에서 맞붙은 전투입니다. 호주군은 무려 다섯 배나 많은 중국인민지원군과 싸웠습니다. 중국인민지원군은 인해전술 전법으로 줄기차게 호주군을 공격해 왔고 호주군 왕립연대 3대대는 사투를 벌이며 가평군 북면 504고지를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그리하여 호주군은 춘천∼서울 간 주요 도로를 사수하고 중공군 춘계대공세를 저지해 수도 서울을 지켜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2박 3일 짧은 전투 기간 호주군 32명 전사, 59명 부상이라는 큰 인명피해를 입은 반면 중공군은 1천 명 사망, 1만 명 부상이라는 아주 엄청남 인명 피해를 입고 퇴각했습니다. 이는 호주군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전투가 됐습니다. 이제 호주군에게 있어서 가평은 희생과 영광 그리고 명예의 땅입니다. 이곳이 가평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참전용사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구하고, 영토를 사수하고,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손을 잡아드렸다. 구순을 바라보는 거동도 불편하신 벽안의 참전용사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부여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이처럼 가평전투는 승리한 영광의 전투였다. 이날 제막식장에서 만난 가평전투 참전용사 톰 파킨스은 5년 전에 한국을 가보았는데 전쟁의 폐허 속에서 눈부신 발전을 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경탄을 금치 못한다면서 자신도 잘사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3년 전에 멜버른참전비 기공식장에서 만났던 추진위원회 공동회장이었던 빅데이를 만나보려 했으나 2년 전에 벌써 별세했다고 했다. 이제 참전용사들의 평균 연세가 87세이고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세상을 떠날 것이다. 호주군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을 때, 호주정부와 지방정부, 호주 보훈처와 호주재향군인회, 한인단체, 참전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축이 돼 호주에 ‘가평스트리트’, ‘가평부대’를 명명하고 ‘가평데이’를 지정해 기념식을 갖고 후세대에게 알리는 것에 대해 가평군수로서 한없는 고마움과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한 본인도 현재까지 다섯 번이나 참전비 건립에 가평석 지원을 했는데 요청이 있으면 계속해서 지원할 생각을 하며 멜버른공항을 뒤로하고 귀국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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