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대표 유산이자 전 세계가 인정한 유물인 남한산성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전 세계인과 후세에 남기기 위한 노력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다. 매년 정부 차원은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도 예산을 들여 남한산성을 복원하고 문화행사 등을 개최하면서 남한산성을 보존하고 민간의 관심도를 제고하는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복원 및 발전계획은 남한산성이 지닌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근래 문화유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시되는 지역공동체와의 소통 부재는 큰 과제이다. ...
# 경기의병의 거점 남한산성 1896년 경기지역 항일의병들의 투쟁 거점은 남한산성이었다.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그해 11월 발표된 단발령에 반발한 이천과 여주·광주·용인·양평 등 경기지역 의병들은 서울에서 가장 근접한 남한산성에 운집해 일제로부터 궁성을 탈환하고자 했다. 이천수창의소는 서울에 있던 유생들인 김하락·조성학·구연영·김태원·신용희 등이 이천에 모여 단발령이 공포된 다음 날인 1895년 12월 31일 의진을 구성했다. 김하락 의진이 900명 넘는 군사를 모집하자 용인·안성·포천·시흥·수원·안산 등...
경기도의 대표적 유적지인 남한산성에서 지난 3월 31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가 주최하고 ‘남한산성을사랑하는모임(남사모 시민연대)’ 주관으로 열린 이 행사는 100년 전 남한산성에서 보여 준 선조들의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기리고, 평화통일과 세계평화의 염원을 널리 펼치고자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함께 마련됐다. 행사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은 남한산성에서 함께 만세를 외치며 대한민국이 영원한 독립국가임을 되새기면서 남한산성의 호국정신을 기념했다. # 남한산성의 3·1운...
# 남한산성 취고수악대의 역사 광주시 지역문화 중 하나인 남한산성 취고수악대(南漢山城 吹鼓手樂隊)는 1793년(정조 17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수어청에 설치한 군영 악대다. 여기서 ‘취고수’는 임금의 어가나 현관들의 행차에 따르는 악대 가운데 하나, 행렬의 앞에 서는 악대를 말한다. 조선시대 정묘호란 이후 중앙군사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남한산성에 설치한 중앙군영의 하나인 수어청(守禦廳)이 병자호란 이후 줄곧 남한산성에 300여 년 동안 주둔해 있었으므로 남한산성에는 600여 명의 수어사와 유수가 거쳐갔으며, 수어청 군사와 ...
남한산성을 끼고 있는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에는 조선시대부터 둔전(屯田-군사 요지에 주둔한 군대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설치한 토지)이 있어서 둔전병들이 군악으로 농악을 쳤고, 또 조선시대 통신 방법인 남산역과 관영 숙박시설인 황교원(黃橋院)이 있어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던 만큼, 풍물도 매우 왕성하게 전승돼 왔다. 하지만 이 지역 또한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20세기 후반에는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되고, 풍물의 기능이 쇠락하면서, 정월 초의 지신밟기나 정월 대보름날 등 세시풍속과 관련해서만...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후기 10대로 중 하나인 봉화로의 일부 노선으로,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노선 중 하나였다. 봉화로의 일부 구간과 주변의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들을 연결해 탄생시킨 것이 바로 남한산성 옛길이다.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왕들이 여주의 영릉을 참배하러 갈 때, 보부상들이 보따리를 지고 인근 장터를 떠돌 때,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할 때 지나던 길이었다. 이처럼 남한산성 옛길은 지난 시절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지금 남한산성 옛길은 우리에게 동서남북 4개의 특색 있는 길을 ...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영화 ‘남한산성’은 주화를 편들지도, 척화를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영화 ‘남한산성’의 원작자 김훈은 370년 전의 치욕을 왜 21세기인 지금 다시 꺼낸 것일까? 작가는 무엇보다 ‘치욕을 기억하라(memento infamia)’고 말한다. 또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도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럽혀지는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한...
영화 ‘남한산성’은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산성을 알리는 데 상당히 공헌한 작품이자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지정 이후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낸 좋은 영화다. 역사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삶과 죽음의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의 기록이다.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진격해 온 게 병자호란이었다. 남한산성은 47일간 성 안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척화파와 ...
# 백제를 지켰던 남한산성 백제의 온조왕은 BC18년 백제를 세우고 하북위례성에 도읍했다. 동명의 사당을 짓고 천제를 드렸다. 백제의 하남위례성은 남한산 밑에 자리잡았는데 ▶북쪽에는 한수(漢水·한강)가 띠를 두르고 ▶동쪽에는 숭산(崇山·검단산)이라는 높은 산 ▶남쪽에는 넓은 벌판(沃澤:南澤, 성남시 屯田동) ▶서쪽에는 넓은 바다(大海)가 있다는 기록을 보면 서울지역 중에서 한강 바로 아래에 이러한 지역은 하남시 고골 외에는 없다. 특히 검단산의 검은 ‘곰, 감, 가미(神)’로 ‘신성한 제단이 있는 산’으로 온조, 다루왕, 구수...
경기도 동부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수년 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됐고, 영화의 주 스토리를 이뤘던 내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병자호란 당시 굴욕의 역사가 담겼다. 이처럼 치욕적인 역사의 상징으로만 남았던 남한산성은 거꾸로 보면 끝까지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버텼던 항쟁의 마지막 보루였다.1636년(병자년) 12월 청 태종이 2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자 ...
남한산성은 2014년 우리나라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석굴암, 불국사, 창덕궁, 수원화성, 하회·역사마을 등에 이어 남한산성이 등재된 것은 남한산성이 가진 역사적이면서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자 처음으로 경기도 주도로 등재가 추진돼 성사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전 세계가 인정했지만 아직은 낯선 남한산성의 가치를 되돌아본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672)의 옛터를 활용해 조선 인조 4년(1626)에 대대적으로 구축했다. 서울의 중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