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가 돌아가는 계절인가 보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 이상 남기고 일부러 걷는데 하늘에서 한 무리의 커다란 새들이 ‘두룩두룩’ 선회한다. 순천만 일원에서 겨울을 난 흑두루미들이 여름을 지낼 시베리아 아무르 지역으로 떠나는 도중에 연수구를 지나치는 모양인데, 왠지 어수선하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영어 알파벳 브이를 넓게 펼치며 북녘하늘로 날아야하거늘 대오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희뿌연 하늘을 맴돈다. 먼 길 떠나기 전에 허기진 걸까? 순천만 일원에서 두둑하게 먹었을 텐데, 혹 숨이 답답해 그러는 건 아닐까? 수명이 긴 두루미 종...
서구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19세기 중엽의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중국, 일본, 조선 등 동북아 3국은 그 피해자로 전락하게 됐는데, 중국은 아편전쟁과 애로우사건을 겪으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게 1860년 북경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일본 역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해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했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병인, 신미양요의 참화를 겪고 급기야 일본으로부터 1875년 군함 운요호의 포격을 당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
"사려 깊고 헌신적인 시민들로 구성된 소수의 그룹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이는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실이다. 실제로 이 세상은 그러한 소수에 의해서 바뀌어져 왔다." 남녀 성 역할의 편견을 깬 인류학의 대모인 마거릿 미드가 남긴 말이다.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유력 인사들이 일시에 자신의 길에서 추락하고 있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사람들의 대열에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있다. 미투선언으로 인해 힘 있는 위치에 있어 힘 없는 사람들에게 가했던 구태들이 밝혀지고 ...
권력의 성 지배와 착취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구약레위기에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 목록에 성범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남의 아내, 근친상간, 동성애, 짐승과의 교합 등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성 착취는 기원전 2700년께 수메르 도시국가인 우루크를 통치했던 길가메시 왕으로 시작된다. 그의 영웅적인 생애를 노래한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어떤 여자라도 마음만 동하면 그는 관계의 대상으로 삼았고, 결혼 첫날 밤에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동침하는 초야권을 행사한 역사상 첫 번째 인물로 알려졌다. 이런 관습이 고대 ...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은 한 곳이라도 더 봐야 한다는 욕심으로 유적지에 도착하면 사진 몇 장을 찍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에 급급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중 문화유산을 그리고 있는 여행자를 만났다. 사원을 구성하는 부재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화폭에 담아내고 있던 그는 화가가 아닌 평범한 여행자였다. 주마간산식 여행에 만족하던 내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장면으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살펴보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은 대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이지만, 이를 실행하기까지에는 큰 용기...
2018년 설을 맞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또 한 번 소망과 기원을 담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으리라 생각된다. 사람들마다 새해를 맞는 방법은 다양할텐데, 어떤 이는 한 해의 출발을 일기장에 기록하면서 시작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새해 인사를 전하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어서 대다수가 손으로 직접 쓰고 그리고 우표를 붙여 보내야 하는 수고로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SNS, 인터넷 등을 이용해 우표 없는...
목동병원이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평가에서 상급 종합병원 기준을 만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4명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연달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목동병원은 의료기관 질 평가 외에도 유방암 적정성 평가, 대장암 적정성 평가 등에서도 1등급을 만족시키고 있어 이런 평가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판단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평가는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인증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의료기관뿐 아니라 대학도 평가를 통해 질 관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의...
북극해가 이번 겨울에 단단하게 얼지 않자 우리나라가 추워졌다고 기상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데, 왜 엉뚱하게 우리가 추운가? 우리나라뿐 아니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얼어붙었다 하고 눈이 내리지 않는 플로리다의 습지가 얼자 악어가 죽었다는 보도도 나온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곰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열대지역의 악어가 죽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사람은 괜찮을까? 재난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차이가 클지라도 대비하지 않으면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 몇 센티미터의 눈에도 남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작가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존(야만인)과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상징하는 무스타파 몬드(통제자) 간에 이루어지는 다음과 같은 대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통제자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하고,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별탈 없는 2018년을 기원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경제, 사회 제도, 가치관 등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가치를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SNS를 통한 피상적 인간관계가 보편화되고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풍조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정신적 가치는 폄하됐다.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고유한 인간성마저도 물질을 위해 버릴 수 있는 사회현상이 만연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생명조차 쉽게 해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
유엔은 2016년부터 15년간 지구 전체에 대해 지속가능 발전을 목표로 정해 각 지역별 추진 행동 계획을 작성 이행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전 중앙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국내 대책이 전무한 반면 광역이나 기초 자치단체별로 준비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 인천시에서도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기준에 따른 ‘2012 인천광역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작성했고 지금도 시민사회와 행정의 다양한 논의와 협력을 기반으로 계속 보완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 함은 현재의 ...
이 땅에서 어느 때인들 태평성대가 지속됐으랴마는 2017년의 한 해는 우리를 내우외환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두어 놓은 채 이제 저무는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혹자들은 지난 2천500년 동안 우리 민족이 크고 작은 외침을 받은 횟수가 993회로 헤아리기도 하고 더러는 크게 보아 90회 정도라고 주장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지 못한 시인 조지훈은 ‘봉황수(鳳凰愁)’란 시에서 사대주의로 큰 나라를 섬기다가 몰락한 조선왕조의 퇴락한 고궁을 보면서 망국의 슬픔과 비애를 노래했다. 왜 조선의 지배계급과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소중화...
사람이 늙어가는 것처럼 도시도 늙어간다. 도시쇠퇴라는 말로도 불리는 도시고령화는 도시의 기능상실로 이어지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우리나라 도시의 고령화는 인구고령화 속도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보다 체계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우리보다 앞서 도시쇠퇴 현상에 직면한 선진국이 마을 만들기, 노후 건축 개보수, 소규모 재개발과 같은 현지 밀착형 재생 방법을 선택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파트 선호현상, 부동산투기 열풍과 맞물려 재개발, 재건축이 도시재생의 주요 수단이 돼 왔다. 대기업과 거대자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도시재생 ...
얼마 남지 않은 2017년을 뒤돌아보면서 떠오르는 상념(想念) 하나는 선인(先人)들이 종종 언급해 왔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이다. 널리 알려진 표현이라 평범하고 어쩌면 진부할 것도 같지만 ‘옛 것을 살펴서 새로운 것을 안다’는 그 의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와 상황을 떠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같은 의미로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확장시킨 표현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 것...
변화는 스트레스다. 현대사회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오히려 빨리 변화해야 하고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변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라는 말이 몸에 배었다. 한국의 빨리빨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해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오죽하면 외국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호객하기 위해서 거리의 상인들이 ‘빨리 빨리’를 외치면서 상품을 팔려고 할까. 우리나라는 인구 변동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경제성장도 초고속이었다. 초고속 경제성장은 세계적 신화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청라호수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우리나라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청라호수공원의 4km 순환 산책로를 돌며 초대형 음악분수와 호수를 감싸는 초고층 아파트단지를 보았다. 아파트에서 호수공원을 내려다보는 게 더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역 위치를 표시한 조형물을 지나쳤다. 청라국제도시의 주민 염원을 담은 걸까?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청라신도시 일원의 생경한 분위기를 한 일행이 전했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연결되지 않아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은 주민 대부분이 서울로 출퇴근한다는데, 그들은 스스로 인천시민...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들이 또 있을까. 번화한 도시의 상가는 물론이고 신파조 음악이 울려 퍼지는 시골 읍내의 장터나 뒷골목 안에서도 어김없이 성업 중인 노래방의 간판을 보면 가히 대한민국은 ‘자칭 가수’들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도 공중파나 종편, 케이블을 망라하고 노래를 아이템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다향하게 포진돼 있다. 그런 걸 보면 노래는 우리 국민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신명 발산의 강력한 매개임이 분명한 듯싶다. 그래서일까 현재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노래와 관련한 축제와 행...
최근 백범 김구(1876~1949)의 청년 시절 이야기가 ‘대장 김창수’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되고 있다. 김구가 나이 20세의 청년이었던 시절인 1896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하면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청년 김창수가 625일을 보내면서 인천 감옥소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백범 김구 일생을 소재를 다룬 영화는 다수 나온 적이 있지만 그 중에서 청년시절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는 극히 이례적인 것이라 청년 김구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
작금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5G세대의 핵심 키워드가 되는 것으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변화이며 누구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넓은 범위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인터넷으로 연결됐던 4G사회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다양한 단말기를 초고속, 초연결사회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새 사회에서는 지금까지의 사회와는 현격하게 다른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꿈으로 꾸었던 세상이 현실에 존재하게 되는 사회라고도 한다. 이런 사회에 우리가 적응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3차 ...
2017년 벽두부터 미국에서는 거의 70년 전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가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 1위에 올랐다. 왜일까?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신봉자였다. 30대 초반에 그는 공화주의자의 편에서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의 민병대에 입대 후, 부상을 당해 후송되고 공산주의경찰에 사찰을 받게 된다. 그는 코민테른의 교조적인 행동이 프랑크의 파시즘과 똑같은 전체주의 모습임을 발견하자 곧 환멸을 느끼며 스페인을 탈출한다. 그 후 스페인 내전의 진실을 알리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집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