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MZ세대들이 취업을 위해 빠르게 달려 가는 와중에 자신만의 뚝심과 소신으로 다른 외길을 걷는 청년들도 있다. 평생 곁에서 함께 해 왔던 부모의 ‘업’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발견하고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젊은 청년들이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여타 청년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에 대한 자긍심과 확신은 그 누구보다 단단한 다이아몬드 같다. 다른 젊은 세대가 느끼는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고충이 있지만 배우는 즐거움이 이를 잊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평택에서 배 농사를 하는 부모의 뒤를 잇고자 준비하고 있는 이충현(25)씨와 안산에서 부모와 함께 천연 페인트의 세계에 빠져 있는 강고운(31)씨를 만나 봤다.

아버지 이정경씨와 그의 아들 이충현씨의 모습
아버지 이정경씨와 그의 아들 이충현씨의 모습

# 묵묵한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리틀 농업인

기계 설계와 제작을 전공한 이충현 씨는 최근 배 농사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전공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 이유에 대해 "배 농사를 홀로 시작한 아버지의 역할이 가장 컸다"며 "12년 넘게 아버지가 힘들고 궂은 일에도 항상 즐거워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가업을 이어받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기계설계 관련 연구원으로 한 회사에 입사했으나 군 입대로 인해 1년 후 퇴사했다. 그는 공군대에서도 항공기 관련 업무를 맡을 정도로 기계 설계·제작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군 복무 이후 두 달 동안 과수원에서 아버지를 도와주고 있던 때 마침 전 직장의 ‘복직 콜’을 받은 이 씨는 깊은 고민 끝에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그는 "고생 끝에 직접 가꾸고 키운 과일을 수확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좋은 말과 평가로 인해 가업을 잇기로 결정했다"며 "이왕 시작한 일 끝까지 잘해 보자는 생각이 앞선 상태였다"고 말했다.

제대로 해 보겠다는 생각에 농협중앙회가 운영한 청년농부사관학교에 입학해 6개월간 농사에 대한 전반적인 기초이론교육 등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기초교육이 끝난 후 지난해 3월엔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해 과수학을 전공하고 있다. 2023년 졸업 예정인 이 씨는 학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있어 본격적인 농업인의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또 아버지가 2009년부터 운영해 왔던 배 농사 경작지도 서서히 넓혀 갈 계획도 갖고 있다.

가업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 씨는 "가업을 잇는 것은 일반 회사에서 편하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대신 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시밭길이라고 표현했다. 가업을 잇는 과정에서 무조건 좋은 일만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난관에 스스로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가업을 혼자 일궈 나가야 할 때가 도래했을 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아직 학생 신분이고 가업을 승계한 지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아 농장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며 "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정식적으로 승계받았을 때 ‘지금 아버지가 하는 만큼의 이상을 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농장에 접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씨는 가업을 잇고자 하는 또래의 청년들에게 희망찬 미래에 대한 꿈을 가져 볼 것을 권유했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준비와 마음가짐을 갖추면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늘 다짐한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아버지가 쌓아 둔 것 이상으로 농가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목표를 조심스레 밝혔다.

이 씨는 "농업인들은 정부가 인정해 주는 ‘명인’과 ‘마이스터’라는 타이틀을 받을 수 있다. 그 두 개를 모두 취득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라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유명한 배 농사꾼이 되고 싶고, 나만의 시그니처 가공상품을 만드는 것도 꿈이다"라고 목표를 밝혔다.

# 교육의 뜻으로 이어진 가업의 길

안산시 상록구에는 통상 가업을 잇기 어려운 분야로 지칭되는 미술·예술에서 부모의 뒤를 따르는 젊은 여성이 있다. 2년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강고운 씨는 본래 미술·예술 분야가 아닌 체육교육을 전공해 이와 관련된 직업을 희망해 왔다. 그러던 중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걸어온 길에 뒤늦게 매력을 느끼고 동행을 결심했다.

강 씨의 어머니인 이희숙 라주어코리아 대표는 천연 페인트를 사용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천연 색채 공간을 만들고, 미술과 예술을 접목시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고유한 개인성의 발전을 이끄는 ‘발도르프 교육’을 하고 있다.

강 씨의 부모는 모두 미술 전공으로, 고운 씨와 전공 분야는 달랐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 준 건 바로 ‘교육’이었다.

그는 "체육교육이긴 하지만 같은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부모님이 하는 일과 공통점이 있어 2019년 1월부터 같이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 씨는 부모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관에 동질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해 오던 일을 동경해 왔던 점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 이유가 됐다.

천연페인트를 활용한 라주어코리아 벽화 모습.
천연페인트를 활용한 라주어코리아 벽화 모습.

물론 심적 갈등도 많았다. 가업을 이어 받겠다고 결심하기 이전에는 기간제 교사, 강사 등 체육 관련 교육일을 하고 있었다. 또 체육교사를 목표로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있었지만 가업을 잇는 것 역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부모가 걸어온 길을 함께 걷기로 했다.

가업 승계를 결심하기 전에는 코로나19로 취업난이 휘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가업을 잇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미술·예술 분야 공부는 물론 천연 페인트 시장을 물색해야 하는 등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지금 강 씨는 라주어코리아에서 온라인 업무와 홍보 등을 책임지고 있다. 부모가 운영하던 시기에는 오프라인으로만 천연 페인트와 미술도구 등을 판매해 왔지만 온라인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후 천연 페인트 등의 미술 제품 판매가 2배 이상 오르는 등 성과도 거뒀다.

강 씨는 "부모님의 일은 학교 공간을 예술적·창의적·건강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모토로 천연 페인트를 이용해 시공하는 일도 하고 있다"며 "지금은 온라인과 홍보 쪽을 맡고 있지만, 시공 등 천천히 일을 넓혀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막연히 가업을 이어갈 수도 있는 젊은 층들에게 그는 자신이 겪었던 고충을 이야기하며 배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충분히 가치가 있고 존경의 생각이 든다면 가업을 이어받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다만, 할 게 없어서 억지로 가업을 잇는 것은 서로에게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과 세대 차이가 있어 결정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결정과 생각을 배려하고 한 걸음 물러나는 방법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편안한 공간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과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웃음을 지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사진=홍승남 기자 nam1432@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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