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정(情)을 근간으로 이루는 함께하는 동행 문화가 바탕이 된다. 하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와도 같은 거칠고 급변하는 사회적 현상 때문에 이웃 간 교류는 갈수록 줄어든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항목을 집에서, 자신의 방에서 휴대전화 하나로만 누워서 쏙쏙 뽑아내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도움 없어도 쉽고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얻는가 하면, 그 정보에 따른 물품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문 앞까지 배달시킨다.

‘품앗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서나 겨우 찾아봄 직하고, 중요치 않은 단어로 취급돼 소위 말하는 MZ세대 상당수가 단어의 뜻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우리집 말고 이웃집은 고작 2∼3가구에 불과한데 누가 사는지,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조차 모른다. 

직장환경에서는 특히나 이 같은 현상이 도드라진다. 국민들이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보통의 ‘직장’은 대부분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조직원 개개인이 서로의 경쟁 상대인데다 이전과 달리 함께하는 문화가 사라지다 보니 더없이 차갑다.

하지만 이문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어서인지 공조직에서는 아직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라고 부를 만한 정을 이어가며 동행하는 문화가 희미하게나마 살아 숨 쉰다.

중부해양경찰청
중부해양경찰청

# 중부지방해양경찰청

바다의 경찰이자 군(軍)인 해양경찰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겐 다소 생경하다. 그들의 업무나 업적은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다. 특별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이 어떤 임무를 띠고 바다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해경은 조직원 간 유대감이 남다르다. 업무 특성을 교감할 대상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바다에서는 세상 그 무엇도 작아질 도리밖에 없어 서로를 의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중부해경청 임직원들은 급여의 우수리를 모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문화를 간직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언제 누가 제안해서 시작됐는지조차 불투명하지만 문화로 자리잡았고, 이렇게 모인 성금은 조직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곳에 전달된다.

‘사랑의 씨앗 자투리성금’ 제도로, 매월 지급되는 급여통장에서 1천 원 미만의 금액을 모아 어려운 곳에 전달하는 제도다.

급여의 우수리만을 모으기 때문에 금액은 적지만 한 번 얻은 불씨를 계속 보관하는 재료로 사용되는 숯만큼 길고 뜨겁다.

중부해경청은 올 4월에도 경북·강원지역 산불 피해민을 돕고자 한 차례 집행하고 지난해 10월부터 다시 모이기 시작한 ‘자투리성금’ 70여만 원을 지원했다. 또 지역 내 소외된 이웃에게도 급여의 우수리를 모아 만든 68만 원을 전달했다.

중부해경청뿐만 아니라 관할 인천해경서, 평택, 태안, 보령서 등 모두 같은 문화를 지니고 이어간다. 

평택서는 2019년 소외된 이웃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3천800장의 연탄을 대한적십자를 통해 기부했고, 2020년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가정에 컴퓨터를 보냈다. 지난해 4월에는 개서 10주년을 맞아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보령서 또한 자발적 모금을 통해 2020년 연말연시에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1천400여만 원을 모아 적십자에 전달했고, 올해 강원 산불 피해민들을 위해 3천여만 원이라는 큰 돈을 모금해 전달하기도 했다.

인천경찰청
인천경찰청

# 인천경찰청

경찰도 마찬가지로, 조직원 간 업무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며 수십 년을 함께 근무해야 하는 이유 등으로 유대감은 해경 못지않다.

사실상 모든 공무원을 대상으로 놓고 볼 때 가장 위험한 근무환경은 단연 경찰이다. 낮에는 거리의 수많은 차량들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부서에 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범죄자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경찰에게도 동행 문화가 존재한다. 업무 특성상 근무 중 다치는 동료들이 특히 많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인천경찰청 직원들은 매월 조직적으로 상조회비를 걷어 어려움에 빠진 동료들을 돕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조직적인 문화에 불과하고, 이들은 이 밖에도 자발적인 동행 문화를 지닌다. 공상이나 장기 투병 중인 동료를 위해 자발적 모금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특별한 경우에는 한시적 상조위원회도 구성해 긴급하고 어려운 순간을 함께 헤쳐 나간다.

인천경찰은 특히 조직원 간 도움을 위한 문화가 아닌 업무 특성으로 인한 동행문화가 존재한다. 바로 희망자에 한해 1인당 매월 3천 원을 기부하는 제도인데, 이 중 50%는 공상이나 장기 투병 동료에게, 나머지 50%는 범죄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2019년부터 인천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은 자발적으로 3천 원씩 1천400여만 원을 모아 어려운 동료들과 범죄피해자들에게 지원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매년 1천400여만 원을 평균적으로 모금했다. 올해는 벌써 1천300여만 원이 모금됐다.

인천경찰청 직원들은 사이드카 순찰 중 신호 위반 오토바이를 추격하다가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오는 바람에 크게 다친 경찰관을 위해 치료비 일부를 지원했으며, 음주운전자로 인해 어깨뼈가 조각난 직원의 치료비도 지원했다.

모두 정해진 상조회비에서 지급된 금액 외의 지원이다. 경찰관들이 서로의 업무 특성을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하기 때문에 생겨난 자발적 모금이자 지원이다.

인천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이 최근 4년간 동료들과 범죄피해자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은 금액만도 자그마치 1억4천172만 원에 달한다. 

일반 사조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 조직원은 물론 범죄피해자까지 지원하는 나눔과 동행 문화가 그들에겐 이어진다.

인천지방검찰청
인천지방검찰청

# 인천지방검찰청

동행과 나눔의 문화로 그 결은 같지만, 검찰은 조직원을 위한 지원보다는 피해자를 위한 지원 제도가 발달했다.

이 또한 검찰의 업무 특성과 연결되는데, 검찰의 모든 기소 뒤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피해자가 존재한다. 피해자들은 아무 잘못 없이 피해를 입지만 그 누구도 피해를 복구해 주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편에 서서 범죄자들의 잘못을 밝혀 내고,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검찰은 지원제도 또한 피해자 쪽으로 한껏 쏠렸다. 송치 전 긴급 지원과 송치 후 최선 지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기관의 수사, 검찰의 기소, 법원의 판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뉜다. 하지만 이 기간 피해자는 어떤 지원도 없이 스스로 이 과정을 모두 이겨 내야만 해 큰 어려움이 따른다.

이에 따라 인천지검은 송치 전 긴급 지원 제도를 시행, 사건이 발생해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을 파악해 긴급 지원을 시행한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11월 다세대주택 층간소음 문제로 흉기에 찔린 피해자를 위해 치료비와 생계비를 우선 지원하는 등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21건의 송치 전 긴급 지원 활동을 벌였다.

검찰은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지원을 잊지 않는다. 성폭력이나 스토킹범죄 피해자의 경우 2차 피해를 당하기 십상이어서 검찰은 피해자들의 주거지를 이전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9월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서 동영상을 촬영당하는 등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주거지 이전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등 송치 후 피해자 지원 제도를 시행했다.

이 밖에도 피해자들에게 긴급생계비를 지원하거나 범죄 피해 구조금을 전달하는 등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피해지원금을 오로지 피해자들에게 전달한다. 

  이인엽 기자 yy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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