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직사회에서는 예민하면서도 서로를 구분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이른바 ‘늘공’과 ‘어공’이다. 

늘공은 공채로 들어온 직업공무원인 ‘늘 공무원’의 줄임말, 어공은 특채된 별정직 공무원인 ‘어쩌다 공무원’의 약칭이다.

이 두 단어가 만들어진 시기는 채 10여 년이 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맡은 이동관 현 대통령비서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이 관료조직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만든 말이다. 

이후 공직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늘공과 어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지금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모른 채 사용된다.

공직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지방선거다. 지방선거는 소위 ‘공무원 선거’라는 말대로 공직자 출신들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으로 대거 진출하거나 선거 이후 자신들의 거취와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어공은 지방선거를 거쳐 입성한 선출직 공직자와 한 배를 타 요직을 맡는다. 늘공의 입장에서 눈엣가시로 비쳐지는 이유다.

선거 직후 어공들이 유입되면 늘공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 구도가 형성된다. 지난 6월 1일 제8회 전국지방선거가 치러진 만큼 공직사회에서 또 한 차례의 커다란 바람이 예고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공직사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늘공과 어공이 ‘불편한 동행’을 할 도리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서로 ‘편한 동행’ 관계를 유지할지에 대해 늘공과 어공의 허심탄회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정부서울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후문을 빠져 나간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후문을 빠져 나간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 어공에 대한 비판적 시각

경기도내 한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공채로 공직사회에 들어온 늘공이다. A씨가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당시만 해도 어공과 늘공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두 단어를 들었을 때 그의 심정은 부정적이었다.

그는 "서로를 규정하는 단어가 일절 없다가 어느 순간 대비되는 단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처음 단어를 접했을 때는 서로를 구분하는 단어로 사용하다 보니 부정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늘공 입장에서 어공은 ‘상대적 박탈감’의 원인이 됐다. 요직을 도맡아서다. 

A씨는 "선거가 끝날 때마다 승진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 세 계단을 승진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열심히 시험을 치르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자신의 상사로 혹은 옆 부서 상사로 들어오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특히 정무라인에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의 어공이 들어오면 박탈감이 더해진다"며 "30대 어공이 5급인 팀(광역단체)·과장(기초단체)급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늘공의 10년 이상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고 토로했다.

# 늘공이 바라본 어공의 긍정적 측면

어공에 대한 늘공의 시각에 변화가 감지된다. 공직사회에서 어공이 없어지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더 이상 차별을 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동행해 조직 발전을 위한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다시 말해 서로를 갉아먹는 나쁨이 아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협력하는 대상으로 관계를 설정하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A씨의 입장에선 늘공과 어공이 크게 차이가 없다. 구분할 이유도 없다는 입장이다. 늘공도 정년퇴직을 하는 만큼 기간의 차이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같은 임기제라는 생각에서다.

A씨는 "공무원의 끝이 정년퇴임이라고 한다면 늘공도 사실상 어공과 같은 임기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새로운 세대들이 들어오고, 공무원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처럼 (공직생활을) 정년까지, 30년(공무원연금 최대 혜택 기간)까지 한다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기에 사실상 임기로 구분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MZ세대가 공직사회에 발을 들이면서 늘공과 어공에 대한 시선도 급격하게 바뀌는 분위기다. 

A씨는 "MZ세대를 보면 두 단어를 크게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급여의 차이가 있어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MZ세대들은 ‘정년까지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기회만 되면 바꾸겠다(이직 등)는 생각도 있고, 자유롭게 생각하다 보니 늘공과 어공이란 말에 얽매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늘공과 어공이 같이 근무하면서 생기는 장점도 많다고 강조했다.

A씨는 "업무 면을 봤을 때 늘공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 비슷하다. 서로 경험한 일들이 유사하고, 해 왔던 해결책도 비슷하기 때문"이라며 "어공이 바라보는 시선은 늘공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르다. 늘공과 어공의 시선이 합쳐지면서 색다른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오랜 공직생활 동안 다양한 어공들을 만나면서 개선되거나 없어졌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A씨는 "어공과 같이 생활하면서 가장 부족했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서로를 이해할 만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소통의 장이 없다는 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그는 "시대도 바뀌는 만큼 체계화된 프로그램으로 매듭을 지어 줄 필요가 있다"며 "교육·훈련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거나 각 기관에서 의지를 갖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함으로써 서로 이해하고, 지식도 공유해야 결과적으로 국민과 도민에게 더 잘 봉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늘공에 대한 비판적 시각

수년 동안 어공으로 지내온 B씨는 두 단어에 대해 "‘재밌지만 가볍지 않은 단어"라고 표현했다. 그는 "두 단어는 술자리 등에서 출몰했는데, 최근 언론 기사에서 자주 등장하며 친숙한 단어가 됐다"면서도 "‘어공은 시험도 안 보고 선거 잘 뛰어서 운 좋게 공무원이 된 사람, 늘공은 일 안 해도 사고만 안 치면 철밥통이라는 공직사회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반영된 단어인 듯싶다"고 설명했다. 

B씨는 두 단어에 대해 거부감은 없지만, 초창기 주변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다.

그는 "통상 어공은 선출직 기관장의 ‘논공행상’ 인사인데, 힘 있는 사람들로 인식되기 마련"이라며 "상견례 시기에는 경계와 불안의 시선이 있고, ‘어공 실세’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정무적 역할’ 등 어공이 갖는 긍정적 기능이 자칫 과도하고 부정적으로 작동하게 되면 ‘늘공에 대한 갑질’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B씨는 늘공과 어공의 관계에 대해 ‘형식적 동행’은 기피해야 한다고 했다. "형식적인 동행일 경우 업무환경은 책임 미루기 등 배타적·수동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 어공이 바라본 늘공의 긍정적 측면

B씨는 늘공과 어공의 ‘동행’에 대해 찬성을 넘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했다. 

그는 "늘 존중의 태도와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늘공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업무성과가 가능하다. 늘공 문화에서도 배울 점이 상당하다"며 "태생적 차이가 있지만 서로 어울려 일하고 지내다 보면 정도 많이 들게 된다"고 했다. 

B씨가 처음 늘공을 접했을 때 느낀 점은 ‘성실하고 일 잘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간혹 공직사회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늘공은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고, 대한민국 행정서비스 체계가 선진국 수준으로 격상된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며 "전문적 행정 경험과 실무적 기술 등은 어공이 쉽게 근접하기 힘든 영역"이라고 했다. 

특히 두 집단의 ‘동행’은 장점이 더욱 많다고 그는 생각한다.

B씨는 "공직사회는 행정과 정무가 공존하는데, 행정 영역에 늘공이 있다면 정무 영역에는 어공이 있는 셈이다"라며 "이는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는 법 규제로 어려웠던 정책사업이 있었는데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추진이 가능했다"며 "늘공의 시행령 개정 타당성 확보 등 법무 행정과 어공의 정무적 접근이 어우러져 관계 기관을 설득한 점이 주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슬기로운 동행’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없는 부분을 채워 줄 때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B씨는 "공직의 존재 이유는 유권자, 나아가 국민을 위한 봉사다. 당선된 기관장의 공약과 철학을 행정에 투여하는 작업이 바로 공직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늘공과 어공이라는 기계적 구분보다 국가의 녹을 먹는 ‘같은 공직자’의 사명과 책무에 우선해야 하고, 다르더라도 함께 가야 하는 숙명이기에 공직사회 전반에 ‘아름답고 슬기로운’ 동행의 모습이 자주 보이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우 기자 k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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