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해해.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를 잘 못 봤으니까. 이상하니까. 자꾸 눈이 가겠지. 그런데 왜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를 길거리에서 흔하게 못 보는 줄 알아? 나처럼, 대부분의 장애인 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를 시설로 보냈으니까. 한땐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 같이 살 집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일반학교에선 쟬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데는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4화 중>

얼마 전 수많은 공감 속에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영옥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영희의 쌍둥이 자매다. 그는 영희의 감정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모자란 애는 함께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며 사회를 향한 속 깊은 응어리를 쏟아내는 인물이다.

이러한 영옥을 보며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발달장애 자녀의 곁에서 함께 걸어온 부모들이다. 민도기(63)씨는 29세 아들 현우 씨, 윤미정(51)씨는 26세 딸 아연 씨, 김영실(63)씨는 33세 아들 기호 씨와 동행한다.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노래교실이 열렸던 날, 인천시 미추홀구 에이블스튜디오에서 그들을 만났다.

지난 2일 인천시 미추홀구 에이블스튜디오에서 발달장애인과의 동행을 주제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2일 인천시 미추홀구 에이블스튜디오에서 발달장애인과의 동행을 주제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자녀들과 항상 일상을 함께하시는 걸로 안다. 하루 일과는.

▶민=오전 10시께 프로그램을 보내고 오후에 활동보조사 선생님이 데려다 주신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요일별로 엄마들이 프로그램을 잡아서 자녀들을 보낸다. 혼자 해 보라고 시켜 놓고도 옆에서 계속 지켜보다가 부족한 부분은 챙겨 줘야 해서 사실상 내내 붙어 있는 셈이다.

▶김=회사를 운영하는 터여서 아들이 오전 근무가 끝나면 활동 선생님이 오셔서 오후 6시까지 봐주시고 그 후엔 제가 다시 맡는다. 낮에도 회사에 묶였기 때문에 개인 시간은 없다고 봐야 한다. 화장실에 가서 씻고 뒤처리하고 옷 입는 거까지 다 봐줘야 한다. 양말은 엄지발가락 있는 데까지 끼워 주면 신는다. 

▶윤=올해부터 아이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해 그나마 낮 동안 가 있을 곳이 생겼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케어해 줘야 하는 건 다른 아이들과 비슷하다. 

-계속 함께 있어야 하니 어려움이 많겠다. 부모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어떻게 하나.

▶민=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괜히 밖에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렇게 말대답을 한다. 의사들은 생각하는 인지가 조금 트여서 자꾸 말대답하는 거라고, 좋아지는 증거라는데 부모는 속이 터진다. 정말 컨디션이 어떨 때는 막 가라앉기도 한다. 그때는 "네 엄마가 죽어라 너 살려 놨더니 이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말한다. 그래도 말대답을 하면 참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엄마들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말 그대로 화병이 난다.

▶김=항상 하는 말이 있다. "기호야 그만해. 너네 엄마는 신이 아니야." 그렇게 열 번 말한다. 물론 대들면 몸 씨름도 하는데, 33살이 되니까 몸 씨름은 안 한다. 이미 예전에 했던 몸 씨름 탓에 골병이 들었다. 아들이 183㎝에 103㎏이다. 안 아픈 데가 없고 안 다니는 병원이 없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굉장히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길이나 어디서도 떼를 쓰기 시작하면 멱살잡이도 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점잖아졌다.  

▶윤=확실히 아이가 크니까 주관이 생기면서 말대답을 하거나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특별히 케어를 한다기보다는 두통이 오면 약을 먹고 그 정도인 듯싶다.

▶김=다른 엄마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끔 여행도 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게 안 된다. 아직까지 진짜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어디 단체에서 우리 아이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일주일 정도 좀 데리고 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없어야 부모들이 온전히 쉬는데 아직은 그런 프로그램이나 단체는 없다. 

-최근 발달장애인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고, 관련 영화까지 개봉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매체에서 다뤄지고 나면 바뀌는 부분이 있는지. 보면서 어떠셨는지.

▶김=‘말아톤’에 나오는 초원이 같은 경우는 그 배우가 연기를 잘했고, ‘우리들의 블루스’ 은혜 씨 같은 경우는 발달장애인 본인이다. 그 밖에 자폐를 가진 친구들이 의사나 변호사로 나오는 드라마들도 있었는데 현실과 안 맞는 부분도 많다. 자폐를 가진 친구들이 대부분 다 천재성을 가졌듯이 묘사되는데 그건 아주 희박하다. 그럼에도 발달장애가 매체에서 더 많이 다뤄져야 한다. 본인이 나오는 편이 가장 좋다.

▶윤=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한지민의 역할이 우리라고 보면 된다. 공감이 많이 갔지만 그것 역시 실제 고충을 다 담지는 못했다. 고충의 일부만 보여 줬다.

▶민=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확실히 매체에 나오고 나면 인식 개선에는 도움이 된다. 어떤 모습으로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어머니들 사이의 유대가 끈끈해 보인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다른 부모들과의 동행은 어떤 의미인가.

▶윤=우리는 다 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부모이기 때문에 서로 듣고 얘기해 주고, 슬픈 대목에서 같이 울어 주는 일들이 많다.

▶민=부모연대 활동을 1회 때부터 했다. 시청까지 머리가 터져 가면서 삼보일배를 하고,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 달라고 외쳤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을 위해 시위를 하고 집회를 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밥이랑 반찬을 싸다 주면서 서포트한다. 우리가 계단을 만들어 줬으니 이제 젊은 부모들이 올라가서 싸우라는 의미다. 그런 노력들로 인해 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좋아지기를 기대한다.

-지난 4월 장애인의날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삭발을 하는 등 지원체계 개선을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어떤 부분이 필요한가.

▶민=우리 아이는 말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은데 취업을 못한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한 가지만 하면 안 보고도 한다. 하지만 업주들은 일을 빨리 하고 출하를 시켜야 돈이 되기 때문에 기다려 주질 않는다. 아들이 정미소에 취직한 적이 있는데, 작은 구멍에 실을 끼우는 작업을 5∼10분 시켜 보다가 안 되니까 아이를 데려 나왔다. 아무리 못해도 3시간은 기다려 줘야 하는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여유도 안 줬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날 아이가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는지 울었고 나도 같이 울었다. 

▶김=우리가 요구하는 부분은 발달장애인 24시간 케어다. 24시간을 딱 붙어 있게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부모들이 원하는 건 자녀들을 자립시키는 일인데 그러려면 일상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도 자립주택을 지원하긴 하지만 복지사는 떨어져 산다. 발달장애 친구들은 경기하는 친구도 있고, 아픈 친구도 있고, 대소변 못 가리는 친구도 있고, 혼자 씻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못 먹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들에게 대충 집만 주면 자립이 되지 않는다. 이 친구들에겐 체계적으로 쪼개고 또 쪼개서 일상생활 훈련을 시킬 만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주민센터에서 성인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활성화돼야 한다. 

▶윤=아이들 나이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엄마들이 계속 같이 살면서 케어하지 못한다. 혼자서 살도록 그룹홈이 활성화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아이가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훈련하는 기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지금 아무리 활동보조사가 있다고 그분들이 24시간 케어를 해 주진 않는다. 그분들도 볼일이 있거나 시간이 안 될 때는 지원을 못한다. 그럼 결국 부모의 몫이다. 저도 일을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두고 쉬면서 아이를 케어한다. 그룹홈을 하더라도 사회복지사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인천시 미추홀구 에이블스튜디오에서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인천지회가 주관한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노래교실’.
인천시 미추홀구 에이블스튜디오에서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인천지회가 주관한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노래교실’.

-말씀을 들어보면 자립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신 듯싶다.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도 느껴지는데. 지역사회와 발달장애인들의 동행이 이뤄지려면.

▶윤=지역사회에서 자립하게끔, 그러니까 독립적인 주체로서 직장도 다니면서 자기 혼자 생활할 만한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부모와 계속 붙어서 동행했지만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노래교실을 하러 아이들이 모이는 날인데 프로그램이나 공간이 지역에 많이 생겨야 한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이런 공간을 알게 돼 운이 좋은 편이다.

▶민=아이가 성인이 되고 점점 더 근심이 많아진다. 결국 아이가 잘 배워서 취업하도록 해 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역사회도 함께 이해하고 기다려 줘야 한다. 기다려 주면 얼마든지 한다. 

저도 처음에는 정서적인 안정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문화생활을 시켜 주고 시야를 넓혀 주면서 죽기 전에 실컷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여행을 다니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이가 벌어먹고 살려면 취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올해는 취업 쪽으로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시키는 중이다. 처음엔 안 되지만 계속 반복해서 연습을 시키다 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난 뒤 자녀들이 노래교실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을 잠시 동안 바라봤다. 그 자리에서는 자녀, 보호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신나는 노래에는 박수를 쳤고, 잔잔한 노래에는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가 됐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어려움을 보듬으며, 행복을 바란다. 감히 엿본 동행은 그런 모습이었다. 

글 ·사진=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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