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에서 전담 지도사가 발달장애인 직무 관련 교육을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에서 전담 지도사가 발달장애인 직무 관련 교육을 했다.

수원역 수인분당선환승센터에 얼굴과 이름이 없는 3개의 영정이 놓인 분향소가 마련됐다. 최근 발달장애인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어려운 생활 여건 탓에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발달·중증장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다.

발달장애인의 손과 발이 돼 한평생을 동행하는 부모와 복지사들은 24시간 돌봄체계 구축과 장애인 자립 지원이 절실하다며 입을 모았다.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 관심을 갖고 상생과 포용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민선8기 경기도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발달장애 아들이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앞으로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너무 답답하고 처음으로 절망했어요." "자녀가 주간보호센터나 복지관에도 들어가고 싶어도 대기 인원이 밀린 경우가 많아 막막해요."

발달장애를 동반한 중증 뇌병변장애인 아들을 둔 A씨는 광명에서 주간활동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활동보조사가 떠난 이후가 걱정이다. 중증장애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된 노동 강도 탓에 활동보조사 연계 자체가 어려운데다, 조기에 근무를 포기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A씨는 발달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약 8시간 보장은 첫걸음일 뿐, 노동권·주거권·소득·일상생활 지원 보장 등 24시간 지원을 위해 쟁취해야 할 권리가 산적하다고 주장한다.

A씨가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일은 결코 순탄치 않다. 장애를 바라보는 뒤틀린 시선과 차별도 곤욕스럽다. 휠체어를 탄 발달장애인이 현장학습을 가려고 저상버스를 이용하더라도 버스 기사와 승객들의 눈총은 따갑기만 하다.

A씨는 "성인이 된 아이가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자립을 하고 싶어도 경증과 달리 중증장애는 아직 하루 4시간만 활동 지원서비스를 제공받는 상황"이라며 "휠체어를 타는 발달장애인은 활동보조사를 오래 기다려도 매칭되기까지가 상당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당선자 시절 수원역 수인분당선 환승센터에 설치된 발달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방문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당선자 시절 수원역 수인분당선 환승센터에 설치된 발달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방문했다.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도 만만찮다. 편측마비를 앓는 발달·중증장애 딸(25)의 어머니 B씨는 "아이가 다행히 21살 때부터 발달장애인 요양보호사로 하루에 3~5시간 근무하게 됐는데, 단위 계약직이라 올 연말 이후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또 집에만 있어야 한다"며 "해당 기간 동안 아이가 사회구성원으로서 뒤처지는 듯 보이고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부모가 평생 함께 있지 못하니 일자리라도 해결되면 시름을 반 정도는 덜 듯싶다"고 호소했다.

B씨는 부모 없이 남겨질 중증·발달장애인의 미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대다수 발달장애 부모들은 사후 장애인 자녀 양육 계획과 관련해 구체적 방안이 없는 상태다. 여러 여건상 발달장애인 자녀를 더 돌보지 못하는 경우 자녀가 어디에서 살지, 누구와 살지 계획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B씨는 "아이가 30·40대가 되면 본인 스스로도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며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심리적 스트레스도 심화된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있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장애를 가진 아이가 의지할 혈육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포기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지원에 관한 법률상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발달장애인 특성에 맞는 돌봄 등의 지원이 의무화됐지만,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 제도는 성년후견제 이용 지원 정도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비용이 많이 들거나 자녀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될지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기존 후견인 제도 이용을 꺼리는 실정이다. 

현행 제도가 청소년 발달장애인 지원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의 한 사회복지사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이 시급하다"며 "발달장애인 인구가 해마다 늘어나는데다, 연령대도 높아짐에 따라 관련 돌봄 부담은 더욱 가중되리라 예상된다. 치매의 국가책임제가 실시된 만큼 발달장애인도 관련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의 직업훈련 교육 자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의 직업훈련 교육 자료.

# 태부족한 발달장애인 활동 지원 서비스

수원역에 설치된 분향소는 최근 발달장애인 가족이 장애인을 살해한 뒤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비극적 죽음이 반복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함께 마련했다.

지난 3월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친모에게 8살 발달장애 아들이 살해됐고, 같은 달 시흥시에서 20대 발달장애 딸이 암 투병 중인 어머니에게 목 졸려 살해당했다.

지난달 3일 안산시에서는 60대 남성이 20대 발달장애인 형제를 홀로 돌보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올해 전국의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는 7건이 보도됐으며, 이 중 3건이 경기도에서 발생했다.

경기도민 1천350만 명 중 지난해 기준 등록된 장애인 수는 57만8천668명이다. 국내 발달장애인은 25만5천207명으로, 이 중 22.1%인 5만6천450명이 경기도에 거주한다.

경기도내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도 전국 대비 각각 21.3%(4만7천295명), 27.2%(9천155명)를 차지해 장애인 10명 중 2명이 경기도에 사는 셈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이른바 ‘사회적 타살’이라는 참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려면 장애 당사자나 가족의 문제로만 남겨 둬서는 안 되는 처지다.

파주의 한 발달장애인 부모는 "아들은 176㎝에 90㎏이 넘는데, 갑작스레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성인을 하루 종일 돌보는 일은 오롯이 저와 남편의 몫"이라며 "복지관과 주간보호센터에 들어가려 해도 오래 대기해야 하고, 돌봄이 어렵다는 이유로 중증 발달장애인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푸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13.5%만 활동 지원 등 생활 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었다. 이마저도 상당수가 하루 평균 3∼4시간이다.

특히 개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필요한 지원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따라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된 2019~2021년 새로 활동 지원 서비스를 신청한 발달장애인 1만4천817명 중 1만3천431명이 월 60~120시간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고 나타났다. 대다수 발달장애인은 하루 2~4시간의 서비스를 지원받고, 하루 8시간 이상을 지원받은 사람은 185명에 불과하다. 

다만,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돌봄을 받을 시간이 늘어남에도 장애 당사자의 여러 여건에 따라 주어진 시간이 차감되기도 한다는 점이 발달장애 부모들 입장에서 난관으로 작용한다.

안양시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이 교육 내용을 전시했다.
안양시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들이 교육 내용을 전시했다.

# 발달장애인 자립을 위한 복지기관과 경기도의 ‘동행’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해 직업 훈련이나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안양시 수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생활부터 전문교육까지 동행한다. 목공·제과제빵·바리스타·도예 등 분야별로 48명의 장애인이 최대 5년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사회복지법인의 위탁을 받아 운영되는 보호작업장도 마련됐다.

만 19세부터 40세까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진행되는데, 안양지역에서는 이곳 복지관에서만 중장년층 장애인을 위한 ‘꽃보다 중년’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사회복지사로 30년간 일한 이형진 관장은 경기지역에도 권역별 평생교육센터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이 취업을 해도 하루 8시간 근무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예컨대 4시간을 근무하면 집에 돌아가기 이전에 나머지 4시간을 낮 시간대에 활용하는 등 서울과 비슷한 평생교육센터를 구마다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수원시 소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기지부는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를 확대해 발달장애인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발달장애인 스스로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에 나선다. 한 달에 64~80시간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는데, 직업훈련과 현장교육도 함께 지원한다. 

발달장애인 C(29·여)씨는 홀로 대중교통을 타고 이곳으로 나와 1주일에 5일간 직업생활적응 교육을 받는다. C씨는 이번 교육에도 의욕을 갖고 교육 내용에 보람을 느끼며 웃음꽃을 피웠다. 주 2일은 다른 사업체를 찾아 사무 보조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김예진 직무지도사는 "해당 교육과정에서는 대인관계나 직장 내 에티켓 등 직업생활 적응기에 필요한 내용을 지도했다"며 "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들은 직장을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신청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민선8기 경기도의 발달장애인 관련 지원도 이어진다. 도지사직 인수위원회 당시 김동연 지사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종합 돌봄체계인 ‘동행 돌봄’을 약속하며 수원역 발달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찾아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발달장애인의 가족 돌봄 부담을 완화하고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경기도형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칭)로의 전달체계 일원화 ▶발달장애인 24시간 통합 돌봄 지원체계 구축 ▶발달장애인 부모와 가족 지원 ▶체험 홈(home)과 누림하우스 설치·운영 ▶자립생활정착금 금액 상향 ▶발달장애인 일자리 지원 등을 검토 중이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로드맵을 수립하려고 부모와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반(TF)을 운영하고, 경기도 발달장애인 지원 기본계획을 신규 마련할 예정이다. 도내 5만7천여 명에 달하는 발달장애인의 욕구와 가족 지원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경기도형 ‘발달장애인 통합돌봄지원센터’도 설치·운영한다.

김동연 지사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 벤처기업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며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의 일 문제, 주거 문제를 해결하도록 앞으로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보겠다"고 강조했다. 

  김민기 기자 mk12@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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