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학교를 통해 건축가로서의 삶을 꿈꾸게 됐어요."
양평군 지평면에는 2015년 경기도교육청의 마을교육공동체 건축동아리로 시작된 뒤 2017년부터 경기꿈의학교로 전환된 ‘건축학교 비버아저씨 꿈의학교(비버아저씨)’가 운영 중이다.
운영 5년째를 맞이한 비버아저씨는 매해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의 높은 호응을 얻으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다른 진로·진학 탐색 프로그램과 달리 딱딱하지 않은 수업 방식으로 참여 청소년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아볼 수 있는 즐거운 분위기가 큰 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비버아저씨의 운영 초기부터 재능기부를 통해 강사로 활약 중인 정혁진 연성대학교 건축과 교수는 "비버아저씨의 수업 목표는 무언가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온 마을이 함께하는 꿈의학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있다.
가족들의 노력 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들의 도움이 있어야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말처럼 ‘비버아저씨’는 학부모 및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양평 청소년 카페 ‘날개’와 학교의 참여로 운영되는 ‘학생이 찾아가는 꿈의학교’로서 온 마을이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학교 안팎의 청소년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기획·도전하면서 삶의 역량을 기르고,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도록 학교와 마을교육공동체 주체들이 지원하는 학교 밖 교육활동을 추구하는 경기도교육청의 ‘경기꿈의학교 정책’의 목표와 일치한다.
날개의 운영진이자 비버아저씨를 운영하고 있는 송혜경 선생은 "2014년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지평중학교 학부모들끼리 모여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고민하던 중 지역 내에 마땅한 청소년 쉼터가 없어 불편을 겪고 있는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2015년 청소년 카페를 마련했다"며 "이 밖에도 청소년들의 진로에 도움이 될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것이 비버아저씨"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올해로 운영 5년차를 맞이한 비버아저씨의 첫 시작은 도교육청의 공모사업으로 진행된 ‘마을교육공동체 동아리’였다.
송 선생은 "당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아이들 가운데 건축가를 꿈꾸는 경우가 많은 데서 착안, 도움을 줄 방법을 찾던 중 마침 건축일을 하는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로 2015년 7월 첫 수업을 시작했다"며 "이후 해당 학부모의 지인인 정혁진 교수가 비버아저씨의 취지를 듣고 흔쾌히 재능기부로 동참해 주는 등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온 마을이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2015년 마을교육공동체 동아리로 시작된 비버아저씨는 이듬해 마중물꿈의학교를 거쳐 2017년부터 경기꿈의학교로 선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축, 기술이 아닌 상상
대패질과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포를 이용해 나무를 다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찾아간 양평군 지평중학교 미술실 안의 모습은 당초 떠올린 ‘건축학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모두 17명의 수강생이 책상 위에 놓인 흰 도화지에 각종 과자로 이뤄진 ‘마녀의 과자집’과 고양이가 서 있는 형상의 ‘고양이 기차’ 및 주전자 모양의 집 앞에 생쥐 모형이 설치된 ‘생쥐가 사는 집’은 물론, 통기타를 본뜬 집 등 형식을 무시한 채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주제로 한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비버아저씨가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강 청소년들은 마치 놀이처럼 자신이 상상해 온 살고 싶은 집이나 학교 및 마을에 필요한 건물 등을 자유롭게 구상하고 그림으로 표현한 뒤 다른 청소년들과의 공유를 통해 재구성하는 단계 등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실제 총 12회로 이뤄진 비버아저씨의 커리큘럼은 수 차례에 걸쳐 자신이 살고 싶은 건물을 그리며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건축 설계도를 제작한 뒤 모형으로 구현하도록 구성됐다.
정 교수는 비버아저씨의 수업 방식에 대해 "수업이 시작되는 첫 몇 주간은 아이들이 자신의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건축은 기술이 아닌 남들과는 다른 창의력이 바탕이며, 창의력은 곧 상상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시절에는 마음껏 뛰어 놀며 편하게 공상과 상상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보니 어떤 일을 할 때 이미 정해진 일정한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때문에 비버아저씨에서 만큼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비버아저씨는 파주출판단지와 서울동대문디자인프라자 및 남산한옥마을 등 건축물을 답사하는 프로그램도 마치 소풍처럼 진행하고 있다.
또 1940년 문을 연 뒤 청량리~원주 간 노선이 변경되면서 2012년 폐쇄된 간이역인 구둔역 등 지역 내 위치한 건축물 답사 등을 통해 풍경화를 그리며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갖고, 지역 내 공간을 이해하며 잘 꾸며진 도시에 대해 토론한다.
이 밖에도 블록 장난감인 ‘레고 아키텍쳐’를 이용해 건축모형을 만들며 창의력을 키우기도 한다.
정 교수는 "건축은 공학이나 예술이 아닌 사회학이자 인문학으로, 그 안에서 사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며 "여행을 자주하며 감성을 키우고,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것이 선행돼야 건축기술도 제대로 익히고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 선생도 "처음 비버아저씨를 시작할 때는 단순히 아이들에게 건축의 기본들을 알려주며 자신의 적성과 맞는지 탐색하도록 하고, 수업이 끝날 때 즈음에는 마을에 작은 정자라도 만들까 했었다"며 "정 교수의 수업방식을 보며 아이들의 잠재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전했다.
#꿈을 현실로
비버아저씨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으로 IoT(Internet of Things·사물인터넷) 등 소프트웨어와의 융합 프로젝트 ‘Smart Village & Smart School’도 진행하고 있다.
IoT는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기술이나 환경으로, 이 같은 융합 프로젝트의 진행은 아이들이 직접 소프트웨어 코딩 등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집을 모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상상만 했던 여러 기술들을 실제 실현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버아저씨에 참여 중인 청소년들은 ‘Smart Village & Smart School’ 프로젝트를 통해 3차원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평면도를 제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물 모형을 만들며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센서나 부품을 연결할 수 있고 입·출력 및 중앙처리장치가 포함돼 있는 기판인 ‘아두이노(arduino)’를 활용해 ▶불이 켜지는 집 ▶돌아가는 계단 등을 현실로 구현해 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수업으로 진행되면서 참여 청소년들은 높은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4년째 비버아저씨 꿈의학교에 참여 중인 명빈호(용문고 1학년)군은 "처음에는 종이를 이용한 모형 만들기에 그쳤던 수업이 아두이노 등 새로운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발전하면서 고정관념도 깨지고, 새롭게 해보고 싶은 주제도 늘고 있다"며 "비버아저씨와 같은 꿈의학교가 더 많이 생겨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비버아저씨를 찾은 한재준(남한고 1학년)군도 "요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건축이어서 비버아저씨에 참여하게 됐다"며 "직접 수업을 들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의 수업이 기대된다"고 얘기했다.
이들이 수업을 통해 완성한 작품은 양평군 내 중·고등학교 동아리 발표회 등을 통해 전시된다.
송 선생은 "아이들의 진로 탐색에 대한 도움은 물론, 닫혀있던 생각을 열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비버아저씨에 도입해 볼 예정"이라며 "아이들이 꼭 건축가가 되지 않더라도 비버아저씨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깨우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승표 기자 sp4356@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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