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의리와 충절의 표상으로 꼽히는 관운장이 최대의 실력자 조조의 온갖 환대를 뿌리치고 의형 유비를 찾아갈 때였다. 부하 한 명 없이 두 형수를 모시고 황량한 산길을 갈 때였다. 산도적 무리가 관운장을 찾아와 부하로 받아들여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관운장이 그들을 타일렀다. "나는 그대들을 받아들일 처지가 안 된다. 옛말에도 있듯이 그대들이 진정 호걸이라면 산속에 숨어 노략질이나 해서는 쓰겠는가. 각자 사악한 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가 스스로 신세를 망치지 말기 바란다." 관운장은 이때 부하들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
삼국지 세계의 최대 실패자로 꼽히는 원소는 아첨하는 부하들을 중시하고 바른 말하는 참모들을 멀리해 끝내 역사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관도에서 조조와 싸울 때 허유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었다. 허유는 장탄식했다.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더니 어리석은 인물과는 함께 일을 도모할 수는 없구나." 결국 허유는 조조에게 귀순해 원소 진영의 약점인 식량기지 오소의 허술한 경비 체제를 지적하고 기습공격해서 불태워 버린다면 원소군이 하루아침에 붕괴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조가 이 계획을 즉시 실행에 옮겨 성...
인재를 구하고, 인재를 활용하는 방안 등에 대해 삼국지는 풍성한 얘기를 수없이 들려준다. 가히 인재박물관이라 할지라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관우의 복수전으로 유비가 강동의 손권 진영을 침입했을 때 조자(趙咨)라는 인물이 구원을 요청하려고 조비에게 갔다. 조비가 그의 인품에 반해 물었다. "손권 진영에는 대부와 같은 인재가 몇이나 있소?" 조자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총명하고 뛰어난 자가 80∼90명 정도는 되며 저처럼 재능이 부족하지만 나라를 위해 노력하는 정도의 인물은 수레에 싣고 말(斗)로 퍼 담을 만큼 그 수효가 헤아리지...
적벽대전 이후 유비가 형주를 차지했으나 이는 손권에게서 빌린 것이었고, 그가 삼국(위·촉·오)의 한 축을 이루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서촉 땅을 빼앗는데 성공해서였다. 서촉 땅을 다스리던 유장은 어리석게도 유비의 검은 속셈을 모르고 구원세력으로 여겨 받아들이는 바람에 잃게 된 것이었다. 유장이 유비를 구원세력으로 받아들일 때 서촉의 이회라는 인물이 간곡히 아뢰었다. "듣건대 나랏님에게는 의견을 다툴 신하가 있어야 하며 아비에게도 다른 의견을 말할 자식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충언에 귀를 기울이소서. 유비를 맞아 들이는 것은 ...
삼국지 무대에서 통치철학 없이 함부로 나라를 거덜 낸 대표적 독재자 동탁을 없애려는 사람들은 많았다. 처음에 이를 시도한 사람이 오부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품안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기고 기회를 노리다가 호위대장 여포가 없을 때 동탁을 죽이려 덤볐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오부를 심문하는 동탁이 "도대체 누가 너에게 반역하라고 시키더냐?"고 묻자 오부가 결연히 대꾸했다. "네가 나의 군주가 아니고, 내가 너의 신하가 아닌데 반역이라니? 이건 만백성의 기대와 충심을 담은 일격이었다. 실패한 것이 억울할 뿐이다. 어서 죽여라." ...
황건을 두른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진압 총사령관이 된 하진은 군사작전에는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예쁜 누이동생이 황후가 됐기 때문에 대장군 지위에 오른 것뿐이었다. 이런 하진이 십상시(10여 명의 내시)들을 죽이려고 동탁을 불러들이는 결정적 잘못으로 후한은 망하고 삼국시대가 펼쳐진다. 동탁은 낙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표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에 ‘끓는 물을 식히려면 솥 밑의 장작부터 빼내야 한다’는 「36계 병법」의 19번째 계책인 부저추신(釜底抽薪)을 써 먹었다. 희대의 독재자가 십상시를 제거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지...
유비는 명장으로 꼽히는 삼국시대 유일한 황제였으나 그의 후계자 유선은 대표적인 암군(暗君)으로 나라를 망친 인물이었다. 유선은 황제 시절 측근 내시에게 휘둘려 국정을 돌보기는커녕 내시 황호와 사치 향락을 즐기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마침내 나라는 망했고 포로 신세가 돼 낙양으로 끌려왔다. 이때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가 꾸짖기를 "너는 황음무도해 어진 인물들을 멀리하고 간신배와 놀아났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했다. 주위에서 말려 죽음을 면하게 됐으나 조금도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얼마 후에 사마소가 술자리를 만들고 유선이 얼큰...
"네가 바르지 못한 자이기에, 나는 너를 버린 것이다(汝心術不正, 吾故棄汝)"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장면이 여럿 있다. 그중 여포의 책사였다가 체포된 진궁이 조조와 나누는 대화가운데 이 구절이 나온다. 조조는 의롭게 살아온 진궁을 살려 주고자 했으나, 진궁은 자신이 모셨던 여포의 악행과 배반의 심벌이었던 전비를 알고 있었던 터라 "오늘은 내가 오직 죽을 따름이다. 어서 죽여라"하고 강경하게 요구한다. 늙으신 어머님과 어린 자식을 생각하면 못이기는 체 하고 조조의 뜻에 따랐겠으나 여포를 모실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