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동네엔 빈집이 많다. 오후 산책길에 만난 낯선 집 중 두 집 건너 한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하다. 동생들과 ‘염소 할머니’ 집이라 부르던 산등성이 집도, 겉보기엔 제법 번듯해 보이는 옆 마을 입구께 집도 이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집은 허문 지 오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던 집 역시 5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남은 가족들은 아무 때나 집을 가꾼다. 마당에 멋대로 자란 풀을 뽑고, 아궁이에 쌓인 오래된 재를 퍼올린다. 외양간에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을 쓸어내 퇴비사로 옮겼다. 이제는 창고가 된 사랑방 물건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하기도 한다. 

 기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공을 들이는 가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풀은 뽑아 봤자 내일 비 오면 또 날 테고, 쓰지도 않는 외양간 청소는 대체 왜 하는지. 가끔 집 정리에 동원되는 날에는 일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투덜거리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은 금세 허물어져"라고. 작은 풀이 틈새를 비집고 자라면서 스러져 버린 화단처럼, 만지지 않으면 집은 천천히 망가져 버린다고.

 얼마 전 연중 행사로 그 집에 모인 대가족을 보며, 낡은 집이 인간관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각자 살기 바빠 서로 날마다 들여다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어진 끈이 지속되길 원한다면 작게나마 꾸준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 공백이 너무 길어지면 어느 순간 복구하기 어려울 만큼 허물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빈집을 쓸고 닦는 마음은 언제든 이곳에 돌아올 가족들을 향한 애정일지도 모르겠다.

 기자도 모르게 쌓여 버린 휴대전화 속 연락처를 본다. 모든 고민을 공유했지만 졸업한 뒤 단 한 번도 연락하지 못한 친구, 첫 직장에서 힘든 마음을 위로해 줬던 상사, 신입기자 때 큰 도움이 됐던 취재원. 인생의 변곡점을 함께했던 소중한 이들이지만 이제는 이름 석 자와 열한 개 숫자로만 남은 사람들이 대다수다.

 우리가 함께 쌓았던 관계는 얼마나 남았을까. 벽만 남은 빈집이 아니라면, 아직 매만질 만한 여지가 있다면 다시 온기가 도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마음이 닿지 않는 관계는 금세 허물어진다. 돌보지 못한 관계에 아쉬움이 남는다.  

<홍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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