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뇌졸중으로 타계한 이 여성을 향해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여성 정치인의 본보기"라 했고, 당시 영국 총리인 캐머런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총리"라는 말로 추모했다. 보수적인 영국 의회정치에 첫발을 들인 여성 정치인이자, 처칠보다 오랜 기간 총리로 재임하며 영국을 이끈 이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철의 여인’이다. 

냉철한 판단력과 강한 의지로 1979년 집권 당시 ‘영국병’에 과감하게 메스를 댄 그녀는 추락하던 영국 경제를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시켰다. 영국병이란 과도한 사회복지와 노조의 막강한 영향력이 빚은 당시 영국 사회 특유의 무기력과 고비용·저효율의 비능률성을 말한다. 그 뿐만 아니라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누구보다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이라는 인상도 남겼다. 반면 그녀가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원칙은 빈부격차 가속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마녀’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이처럼 평가가 양극단으로 갈리는 정치인의 전기영화는 어떤 시선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2012년 개봉한 영화 ‘철의 여인’은 정치적 입장에서는 한 발 물러서서 대중에게 잊힌 대처의 말년을 통해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면에 집중한다.

한 노인이 홀로 편의점에서 우유와 신문을 구매한 뒤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집에선 한바탕 난리가 난 상황이다. 이유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노인이 홀로 집을 나섰기 때문이다. 그랬다. 한때 영국을 호령하던 마거릿 대처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작고 힘없는 노인이 됐다. 5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품 정리를 위해 딸을 불렀지만 마거릿은 여전히 남편을 느끼며 대화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과거의 기억은 그녀를 사로잡았다. 

남편을 만나기 전, 마거릿 로버츠란 이름의 소녀는 식료품 가게 딸로 태어났다. 지역 시의원을 거쳐 시장이 된 아버지의 연설은 언제나 마거릿의 가슴을 뛰게 했다. 또래와 노는 것보다 책을 가까이 한 마거릿은 옥스포드대학에 진학해 정치에 큰 뜻을 품게 된다. 그리고 24세의 나이에 지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연거푸 낙선하고 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평생의 반려자인 데니스 대처를 만난다. 부유한 사업가인 남편은 마거릿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지지했다. 그 덕에 마거릿의 정치행보는 본격화돼 1959년 지역구 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보수당 대표로, 1979년부터 1990년까지는 영국을 이끄는 첫 여성 총리가 돼 전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영화 ‘철의 여인’은 마거릿 대처의 삶을 회상 형식으로 보여 준다. 그 시작은 화려한 재임 시절이 아닌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영특했고 지기 싫어했던 소녀는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소신대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살았다. 그녀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은 자신의 삶은 "매일이 전쟁 같았다"고 말했다. 언제나 거침없고 당당한 모습 이면에는 남성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돼 홀로 느껴야 했을 고립감과 외로움도 자리했다. 이 영화는 대처의 정치적 행보가 아닌 인간적 면모를 통해 연민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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