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화가’라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다. 그의 대표작은 단연 ‘Kiss(1908)’다. 포근하게 여성을 감싸 안은 남성과 그 목덜미를 힘껏 끌어안은 여성. 남성은 여성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대고, 여성은 두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한다. 발밑에 깔린 수백 송이의 꽃은 이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하지만 절벽 끝에 선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의상은 하나의 황금빛으로 합쳐져 있다. 

실제 금을 활용한 화려한 색채와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는 클림트의 또 다른 역작은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이다. 클림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금을 활용한 이 회화는 여성의 얼굴과 손, 어깨와 쇄골을 제외한 모든 부문이 화려한 금박 패턴으로 수놓아져 있다. 작가가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이 초상화는 본래 작품명이 아닌 ‘레이디 인 골드’라는 이름으로 50여 년간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서 전시됐다.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은 현재 미국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서 대중과 만나고 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우먼 인 골드’는 이 초상화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에 거주 중인 82세 노인 마리아 알트만은 유일한 혈육인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1945년 사망한 이모부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의 유서를 보게 된다. 거기에는 "내 재산을 유일한 혈육인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랬다. 페르디난트는 ‘레이디 인 골드’로 알려진 아델레의 남편이자 초상화의 주인이었다.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인 마리아 가족은 2차 대전 발발 전까지 성공한 사업가이자 예술애호가로 풍족한 삶을 살았다. 특히 이모부 페르디난트는 당대 최고 화가인 클림트를 후원했는데, 그 당시 소유한 그림이 바로 자신의 아내를 따뜻한 금빛으로 그린 아델레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가족의 막대한 재산과 미술품은 나치에게 귀속됐으며, 노골적인 유대인 박해도 시작됐다. 결국 마리아는 가족·친지와 헤어져 남편과 단둘이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마리아는 아픈 과거를 잊기 위해 행복했던 시절 또한 묻어 두고 살았다. 하지만 이모부의 유서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백발의 노인이 된 마리아는 가족의 유품이자 사랑하는 이모의 초상화를 되찾고자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반환 소송을 벌인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입장에서도 국보나 다름없는 작품을 선뜻 내어줄 리는 만무했다. 그렇게 8년간의 길고 지리한 법정 공방은 달걀로 바위 치기에 가까울 만큼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은 결과, 아델레의 초상화를 포함한 5점의 클림트 그림 소유권을 인정받게 됐다. 90세의 마리아는 오랜 시간 돌고 돌아 마침내 가족의 추억과 만나게 된다. 

영화 ‘우먼 인 골드’는 법적 분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승소했다는 것, 소유권을 인정받았다는 것에만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상처받는 마음에 위로를 건넨 판결이자, 소중한 추억이 제자리를 찾아간 결과에 진정한 마침표를 찍는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