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호 부천지원민사가사조정위원
조수호 부천지원민사가사조정위원

낚시꾼은 고기를 잡기 위해 떡밥을 풀어 구멍에 숨어 있는 고기를 일단 밖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 다음에 나온 고기를 낚으면 된다. 고기는 떡밥이나 미끼를 탐하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이 잡아먹힌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는 고기가 떡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제 살 깎아 먹기다. 제 살 깎아 먹기(Cannibalization)는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종(Cannibal)에서 나온 말로 극단적으로 동족 전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유권자의 인기만 염두에 두고 듣기 좋은 공약을 남발하는 형태를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하는데, 듣기 좋은 공약은 바로 떡밥이요 미끼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국민주권주의 국가에서 좋은 뜻으로 시작됐지만, 오늘날은 오히려 대중영합주의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국민은 개인적·일시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므로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복지 혜택이 많을수록 환영하겠지만 국가의 재정 파탄이나 여타 부작용으로 그 피해는 결국 개개인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모른다. 남미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돈을 풀어 부동산 버블 현상이 발생한 것은 세계적 추세이지만 지난 정부가 집행한 정책 가운데 포퓰리즘적 성격이 매우 강한 전세자금대출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일조했고, 또한 깡통전세를 만들어 낸 요인이기도 하다.

시중은행은 이자 손실을 공적자금으로 전보를 받으면서 저리로 전세자금을 대출해 왔다. 공적자금은 국민 전체 입장으로 보면 자기 자신의 돈이다. 거액의 전세자금이 살포돼 전세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전세금이 올라가고, 집값과 전세금의 갭이 줄어들면서 부동산시장은 갭투자자들의 놀이터가 됐다. 투자자들이 늘어날수록 집값은 상승하고 유례없는 부동산 상승기를 지속해 왔다. 이렇게 해서 시중에 풀린 돈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돈줄을 죄니 그 다음에는 이자율이 올라가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이제는 금융기관 대출이자율이 올라가자 빚을 내서 집을 사려는 수요가 줄어들고 집값은 내려가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은 전국적인 범위에서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므로 이런 상황에서 집을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된다. 집을 산 사람도 문제지만 이제 더 큰 문제는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고리의 이자를 부담하면서 깡통주택에 사는 세입자들이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깡통주택은 일반적으로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주택매매가격에 육박하는 주택이다. 깡통주택이 경매에 부쳐진다면 임차인은 전세보증금 일부라도 손해를 보게 돼 전세금의 완전한 확보가 어렵고, 이것이 깡통전세다. 깡통전세는 처음부터 임차인이 사기를 당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정상적인 주택이지만 부동산거품 붕괴로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싸져 깡통전세가 되기도 한다. 전세 사기는 전세 계약 시 등기부 등본을 확인하고 전입신고, 확정일자, 임차권등기, 전세금반환보증가입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나 집값 하락으로 깡통주택이 된 경우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전세자금대출을 남발하지 않았다면 전세수요가 적어 전세금을 밀어올리지 않았을 것이고, 갭투자의 여력이 적어 집값 상승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집값의 인위적 상승과 하락은 결국 깡통전세를 초래했다. 만일 전세금 대출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한다면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할 것이고, 포퓰리즘적 정책의 결론은 국민 개개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제살 깎아 먹기인 셈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