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기 인천대학교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전찬기 인천대학교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재난의 4대 키워드는 ‘예방·대비·대응·복구’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측’이다. 예측이 제대로 돼야 예방도, 대비·대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 판교 환기구 사고도 예측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였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벤저민 플랭클린의 말이 이번에도 적중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는 예측부터 실패를 한 것이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진행될 것을 알고 있고 사고가 예측됐음에도 상황을 무시한 결과다. 주최 측이 없다고 예상되는 재난을 방관한다는 것은 직무 유기다. 행정안전부에서 ‘안전’ 분야는 관심을 덜 준 것인지 몰라도 결국은 재난을 자초한 셈이다.

안타깝지만 그동안 국내 압사 사고를 찾아보면 1959년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시민 위안의 밤’ 행사 때 압사 사고로 5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2005년에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MBC 가요콘서트 녹화 중 11명이 압사당한 사고도 있었다.

외국에서도 199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 성지 인근에서 1천426명의 순례자들이 압사로 사망했고, 2015년에도 같은 곳에서 717명의 압사 사고가 있었다. 1989년에는 영국 축구경기장에서 96명이 압사한 사고, 며칠 전에는 인도에서 보행자 교량이 무너지면서 141명이 사망하고 실종자도 많다고 보도됐다. 이 외에도 수많은 압사 사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국내 대중 집회는 월드컵 단체 응원, 광우병집회,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노동자집회 등 수시로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큰일은 없었지만 사고 위험은 상존했다. 밀집 공간에 익숙한 사이에 안전불감증이 차츰 축적돼 이번 사고까지 이른 것이다.

올 8월 한강달빛야시장에는 8만여 명, 10월 여의도 불꽃축제에는 100만 명이 운집했다. 이태원에서도 10월 15~16일 지구촌축제를 해 40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고, 사고 전날(28일)에도 수많은 인파가 모였는데 일부 넘어진 사고도 있었고 사고 당일(29일)에는 10만 명이 모인 걸로 추정된다.

이렇게 군중이 밀집되는 행사 과정에서 전조증상은 여러 곳에서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당국도 참가자도 언론도 모두가 무시하고 남의 일처럼 방관하다가 재난을 맞이한 것이다. 재난에 관한 하인리히법칙을 보면 산업재해에서 무상해 사고가 300번 일어나고, 작은 사고가 29번 일어난 뒤, 대형 사고가 한번 일어난다고 한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경미한 재난 상황도 쌓이게 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여기서 도시공간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근 아파트들은 담장이 없는 곳이 많다. 입주민은 물론 외지인도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하다. 도시의 숨통이 트이는 거다. 이태원 그 골목길에서 해밀톤 호텔의 담장이 없고 자유롭게 통행이 가능했었더라면 또는 호텔 가벽으로 인해 통로가 좁아지는 병목현상이 없었더라면 이번 사고도 막을 수 있었다. 작은 골목길에서도 도시 공간이 중요함을 이번에 알게 된 셈이다.   

이제 과밀문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밀이 일상이 된 숨 막히는 지하철 혼잡도 해결은 물론이고, 다중 인파가 모이는 행사에 대한 대책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재난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난이 벌어지고 나서 "이런 재난도 있네"라고 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리고 재난은 선(先) 투자를 해야 하고, 재난이 발생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예산일지라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투입할 예산의 수백 배가 소실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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