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지친 몸으로 귀가하는 어린 소녀.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도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에 대해 친구들이 놀렸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갓난아이였을 때였습니다.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에 불이 났고, 엄마는 아이를 두꺼운 이불로 싸고 시뻘건 불 속을 빠져나왔습니다. 아이는 무사했지만 엄마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지혜, 함께 가자」(문형동)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합쳐진 형태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어두운 밤에 부모가 자식을 찾기 위해 입을 벌려 애타게 소리 내는 것이 ‘이름’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생을 마감하는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자식의 이름을 외치는 부모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가장 소중한 것의 이름을 자주 발음하며 삽니다. 자신의 마음이 상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기주)

 시력이 약해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앞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오가는 일이 걱정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학교까지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이 엄마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혼자 통학하라고 했습니다. 섭섭했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혼자 다니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버스를 타다가 넘어져 부딪히기도 하고 외면당해서 울기도 했습니다.

 혼자 다니는 게 어느 정도 익숙해진 2년 후였습니다, 학교 경비실을 지나가려는데 아저씨가 내게 말했습니다. "학생! 매일 전봇대 뒤에 서서 학생이 들어올 때까지 손을 흔들며 지켜보는 분이 어머니시지? 버스에서 내려 이곳까지 매일 따라오시고 수업이 끝나면 학생 뒤를 꼭 뒤따라가시고." 그 순간 나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인터넷에서 발췌

 지난 주말, 엄청난 참사로 인해 156명의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이 젊은이라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들 모두는 위의 사례에 나온 부모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키운 자식들인데 말입니다.

 한 일간지에 실린 카톡 내용(10월 29일)이 당시의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나 죽다 살았는데. 다리가 부러진 거 같아.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 났는데"(11:27) "집에 가려다가 맨 밑에 깔렸어. 여기 사람들 막 다 죽었어. 살려줘. 나 무서워!"(11:28)

 이 글을 옮겨 적는 내내, 죽음 앞에서 저 글을 쓰고 있는 젊은이가 내 아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절절한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생일을 하루 앞둔 아들, 가난한 집안을 살리겠다며 가장 역할을 했던 딸, 막 취업해 상경했던 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어느 미용실에 취업한 열아홉 살 막내딸, 여자친구 손을 놓치고 나서 인파에 휩쓸려 주검으로 돌아온 청년, 한국 문화를 너무나도 배우고 싶어 유학을 온 외국인 등등.

 정성으로 키워 낸 이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를 잃은 유족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상상하기조차 힘듭니다. 곳곳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명복을 비는 어느 시민이 남긴 "얼마나 무섭고 아팠겠니.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해."라는 글이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죄 없이 죽은 자들은 이렇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선한 시민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명복을 빌어 주고 있는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들은 면피성 발언으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습니다.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다", "경찰을 증원해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은 아니다"라면서 말입니다. 얼마나 비겁합니까? 그래서 ‘산 자는 비겁하고, 죽은 자만 원통하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지금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유족들의 슬픔에 함께 아파하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자들의 참회와 함께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을 모아 주기를 바랍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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