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지난 주말 벌어진 젊은이들의 비극 앞에서 울부짖는 부모님들의 절규가 아직도 가슴을 울립니다. 그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고 나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요. 그들이 보고 싶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살아계실 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부모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세 편의 글이 「언어의 온도」(이기주)에 나옵니다.

#1. 비 오는 날, 아빠와 어린 자녀가 하나의 우산 아래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빠는 아이가 비 맞지 않게 우산을 아이 쪽으로 기울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를 올려다보며 묻습니다. "아빠, 옷 젖었지?", "아니."

거짓말이다. 한쪽 어깨는 이미 젖어 있다. 이렇게 부모는 우산 밖으로 밀려난다. 어쩔 수 없이. 아니, 아이를 사랑하니까.

#2. 편의점에 4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옵니다. 낡은 모자를 쓰고 작업복에 묻은 흙을 털어낼 때마다 뿌연 연기가 납니다. 힘겨운 하루를 보냈나 봅니다. 계산을 끝낸 따뜻한 즉석 과자를 점퍼 안에 넣습니다. 의아하게 여긴 직원이 물어보자, 남자가 말합니다.

"하하하. 애들 주려고요. 과자가 식으면 안 되잖아요."

#3. 퇴근길마다 마주치는 모자(母子)가 있습니다. 아들은 40대 중반이고, 엄마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입니다. 아들은 늘 목발에 의지해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엉거주춤 힘겹게 걸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작은 체구의 엄마가 그의 뒤를 따라가며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봅니다. 넘어질라치면 엄마는 황급히 아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날씨가 궂은 날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런 궂은 날에는 그냥 집에 계시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장 비라도 쏟아질 기세였습니다. 그날도 아들은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를 조심스레 걷고 있었습니다. 한 손엔 목발 대신 얇은 지팡이가 들려 있습니다. 그런데 전과 다른 모습입니다. 아들 뒤를 지키던 엄마가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뒤 경비아저씨로부터 사연을 들었습니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몸이 불편한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엄마는, 종종 뭔가에 홀린 것처럼 "나 때문에 아들이 아픈 건가 싶어. 미안해서, 내가 정말 미안해서 마음 편히 죽지 못할 것 같아!"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엄마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한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남은 날이 길어야 1년’이란 시한부 통고 앞에서도 엄마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엄마는 틈을 내서 산책에 나섰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공원을 거닐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아들을 억지로 끌고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머지않아 엄마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아들이 어떻게든 두 발로 서서 삶을 헤쳐 나가게끔 걷기연습을 시킨 겁니다. 이것이 다리가 불편한 아들을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어깨가 젖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에게 우산을 기울이는 아빠, 과자가 식지 않게 하려고 품속에 살며시 넣는 아빠, 자신이 죽은 뒤에도 ‘내’가 홀로 살 수 있게 마지막 선물을 울면서 준비하는 엄마! 이렇게 기꺼이 가장자리로 밀려나 살던 부모님의 사랑 덕에 우리는 올곧게 컸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인 ‘너’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너’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존재입니다. 자녀를 잃은 유족들의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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