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영화 ‘더 포스트’(2017)는 신문사 발행인 앞에 놓인 시급한 딜레마를 다룬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71년 6월 18일 금요일 자정 언론의 사명과 회사 존폐 여부 앞에서 한 여성이 고민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결과에 대한 거센 후폭풍은 예견된 상황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여성은 그간 오너로서 정당한 대우와 평가를 받지 못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과연 그녀 앞에 놓인 난제는 무엇이며 어떤 결단을 내릴까? 

아버지와 남편이 차례로 사망하면서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 수년간 회사 경영에 열정을 쏟았지만 그 존재감은 늘 앞선 두 남성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결혼 전 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전업주부로 오랜 시간 살아온 캐서린은 갑작스레 떠안게 된 무거운 직책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에 짓눌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일쑤였다. 사주로서 8년 차에 접어든 1971년, 캐서린은 사업 안정화를 위해 기업 공개와 투자유치에 나선다. 

한편 워싱턴포스트가 1면 기사로 닉슨 대통령 딸의 결혼식 보도에 열을 올릴 때 뉴욕타임즈는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하면서 미국을 뒤집어 놓는다. 펜타곤 페이퍼는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담은 비밀 보고서로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그리고 당시 닉슨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승산 없는 전쟁의 진실을 은폐한 채 추가 파병을 강행한 사실과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명분이 된 ‘통킹만 사건’이 조작됐다는 충격적인 기밀이 담겼다. 

6월 13일 일요일, 뉴욕타임즈는 30년간 지속된 대국민 사기극의 실체를 폭로하지만 정부는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후속 보도를 금지하는 가처분 소송으로 맞대응한다. 6월 17일 목요일, 뒤늦게 4천여 장의 비밀 문서를 입수한 워싱턴포스트는 고민에 빠진다. 진실과 알 권리를 중시하는 신문사 편집장 벤 브레들리와 기자들은 반드시 추가 폭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회사 이사진들은 정부에 반기를 들 경우 투자유치가 철회되고 이는 회사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줄 거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모두 일리 있는 의견이기에 캐서린의 고민은 깊어진다. 신문 인쇄 결정 여부를 코앞에 둔 18일 자정, 캐서린은 폐간의 위험을 감수한 채 추가 폭로를 선택한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 알 권리의 중요성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과 회사의 운명을 걸고 진실 보도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더 포스트’는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는 언론의 사명을 펜타곤 페이퍼를 둘러싼 갈등으로 환기시키는 한편, 여성 경영인의 성장도 의미 있게 다룬다. 1971년 6월 18일, 캐서린의 결정으로 미국내 반전운동은 더욱 확산되고 워싱턴포스트는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는 유력 일간지로 도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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