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법학박사
이선신 법학박사

심리학자 아브라암 매슬로(Abraham Maslow, 1908~1970)가 주창한 ‘욕구계층이론(욕구위계이론)’은 인간의 욕구가 그 중요도에 따라 낮은 수준의 욕구에서 높은 수준의 욕구로 일련의 계층을 구성한다는 이론이다. 초기에는 5계층이었으나, 매슬로가 죽기 1년 전인 1969년 1계층을 추가해 6계층이 됐다. 

이 6계층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생리적 욕구(산소, 음식, 수면, 의복, 주거 등 삶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안전 욕구(신체의 위험과 생리적 욕구의 박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욕구) ▶소속감 및 애정욕구(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존중 욕구(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어떤 지위를 확보하기를 원하는 욕구) ▶자아실현 욕구(자기 발전을 위해 잠재력을 극대화, 자기의 완성을 바라는 욕구) ▶자아초월 욕구(자기 자신을 초월해 다른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이타적인 욕구)가 그것들이다. 

그런데 욕구 6단계 이론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어 1990년 매슬로의 제자들이 ‘존중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 사이에 2단계를 추가해 8단계의 이론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추가된 2단계의 욕구는 ▶인지적 욕구(지식과 기술, 주변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의 욕구) ▶심미적 욕구(질서와 안정을 바라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이다.

매슬로의 욕구계층이론은 사람이 어떻게 동기를 갖고 목표를 실현시키려는 힘을 품게 되는지에 대한 유용한 설명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 이론의 타당성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인간의 욕구위계에 대한 계층화는 실증적이라기보다는 임의적인 것이 아닌가 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경영학(조직행동이론) 등의 학문 분야에서 많이 인용되고, 현실에서도 빈번히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생리적 욕구’는 ‘원초적 본능’과 다를 바 없기에 ‘생리적 욕구’를 ‘안전 욕구’에 포섭해서 이해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를 별개의 욕구로 분류하든 또는 이 둘을 ‘안전 욕구’로 포섭해 이해하든 어쨌거나 ‘생존’과 ‘안전’은 밀접한 요소로서 인간 욕구의 가장 저변에 존재하는 숭고하고도 기본적인 욕구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즉, ‘안전’이란 요소는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모든 가치·이념 논쟁을 뛰어넘는 인류의 가장 원초적·항구적 요청 사항이다.

최근 대한민국이 ‘매우 불안전한 국가’로 세계인들에 의해 낙인찍힐 위험에 처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8명이나 되는 사람(대부분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대형 참사가 또 재발하다니 정말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힌다. 많은 국민들이 "이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으려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절망하며 ‘좌절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밤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트라우마를 겪는 국민들도 많다. "대한민국이 결국 이런 수준밖에 못 되는 나라였던가"라는 탄식도 나온다. 생각건대, 국민들의 국가를 향한 항변과 원망과 분노는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국민의 안전을 챙기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이고 으뜸이 되는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주최자가 없는 집회에 대한 안전 책임은 국가에게 있지 않다’는 식의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내놓았다. 주최자가 없는(또는 특정하기 어려운) 집회일수록 오히려 국가가 적극 나서서 안전을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것 아닌가? 우리 헌법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천명하고(헌법전문),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제10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4조 제6항)고 규정한다. 또한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6조 등의 규정도 실정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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