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을 뜻하는 영단어 ‘Twilight’는 ‘불가사의한’, ‘비밀스러운’이라는 뜻도 내포한다. 이는 땅거미가 지는 황혼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기인한다. 프랑스에서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해 질 녘의 푸른 빛과 붉은 빛으로 인해 저 멀리 보이는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 개봉한 영화 ‘트와일라잇’은 어둠이 시작되는 황혼 무렵에 피어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뱀파이어와 인간 소녀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트와일라잇 시리즈’ 성공의 초석이 됐다.

유독 흐린 날이 많은 워싱턴주 포크스, 17세 여고생 벨라는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가 계신 동네로 이사 온다. 새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벨라는 신비한 분위기의 컬렌가 남매를 보게 된다. 마을 의사인 칼라인 컬렌이 입양한 3남2녀의 컬렌가 형제들은 교내 유명 인사였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자기끼리 뭉쳐 다녔다. 다섯 명의 외모는 특출났지만 에드워드는 특히 수려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주변의 공기마저 냉기가 돌았다. 

첫 만남 이후 며칠이 흐른 등굣길 아침,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달려오는 차에 부딪칠 뻔한 벨라는 에드워드의 재빠른 대처로 사고를 모면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에드워드는 길 건너편에 있었는데 마치 순간 이동을 한 듯 벨라에게 다가온 것이다. 벨라는 그 모습을 수상하게 여겨 마을에 떠도는 전설을 따라가던 중 뱀파이어 스토리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을 접기엔 늦었다. 벨라는 에드워드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깊이 빠져 버렸다. 두 사람은 결국 연인이 됐고, 에드워드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 준다. 햇빛에 노출된 에드워드는 금가루를 뿌린 듯 빛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100여 년 전, 스페인독감으로 죽을 뻔했으나 의사 컬렌이 흡혈귀로 만들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케이스다. 하지만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껴 한동안 뱀파이어 삶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찾은 해결책은 짐승의 피로, 에드워드는 인간과 공존하려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벨라에게 공존은 같은 종이 되는 것이었다. 흡혈귀가 되고 싶은 벨라와 이를 거부하는 에드워드. 과연 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창백한 낯빛과 우월한 외모, 거기에 더해 신비로운 분위기와 막대한 재력까지, 확실히 뱀파이어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 뿐만 아니라 영원한 젊음과 불멸의 존재는 인간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단 하나, 사람의 피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에 흡혈귀는 대체로 인간의 적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인 ‘노스페라투(1922)’에서 흡혈귀는 기괴하고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2008년 개봉한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는 인간 소녀와 풋풋한 사랑을 키워 가는 하이틴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흡혈귀로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간절히 원한다. 척결의 대상이 아닌 연민과 동경의 존재로 탈바꿈한 새로운 뱀파이어는 개봉 당시 10대와 20대의 열광적 지지를 얻어 예상을 크게 웃도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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