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법학박사
이선신 법학박사

법학서적을 처음 읽어 보는 사람은 대개 생경한 한자 용어를 접할 때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필자가 법과대학 1학년 시절 민법총칙 도서를 공부할 때에는 ‘객체(客體)’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객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권리의 주체’, ‘권리의 객체’라는 상대적 관련성을 감안할 때 비로소 ‘객체’란 곧 ‘대상’ 내지 ‘목적’을 의미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영어의 ‘subject’를 ‘주체’로, ‘object’를 ‘객체’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아무튼 ‘권리의 대상’ 또는 ‘권리의 목적’이라고 해도 좋을 터인데, ‘권리의 객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일본식 법률용어를 그대로 따른 결과라 생각된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객체’라는 용어 대신 ‘대상’이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지난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국민은 ‘단속·처벌의 대상’인가 또는 ‘보호의 대상’인가"라는 논란이 일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코로나19 확산 방지 대책인 거리 두기가 3년 만에 풀리고 처음 맞는 핼러윈에 하루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대거 몰려들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경찰·지자체를 포함한 정부의 대비가 너무나 소홀했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이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계획된 무방비’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참사 사흘 전인 10월 26일 오후 3시 머리를 맞댄 경찰과 용산구청, 이태원역, 이태원관광특구 상인연합회 4자 간담회에서 ‘인파 운집 위험’은 관심 밖이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참석자는 "연합회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등을 강조하면서 기동대 배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경찰에선 불법 촬영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여성청소년과의 목소리가 컸다", "구청의 최대 관심사는 쓰레기 처리 문제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청 관계자도 "불법 촬영, 마약 투약, 일반음식점 내 춤 금지 등에 대한 공동 캠페인을 진행했다"면서도 "안전에 대한 구체적 위험을 논의·대비하진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 경찰은 이태원 일대에 경력 137명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는데, 그들 중 상당수 임무는 마약류와 과다 노출 단속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단속을 위해 사복을 입고 근무를 했는데, 당일 마약류 단속 실적은 전무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이 참사 현장에서 수거한 물품에 대해 마약 검사를 의뢰했는데, 조사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다고 하며,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희생자 2명에 대한 마약 부검도 진행했지만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집중적인 마약 단속을 했지만 사실상 그 효과는 크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경찰이 마약 단속을 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마약의 사회적 폐해가 중대하기 때문에 마약 관련 불법행위자들을 단속·처벌하는 일은 긴요하다. 그렇지만 마약 단속에만 치우치고 질서 유지와 안전 확보 노력을 소홀히 했다면 이는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일이다.

일반 시민들은 정복(正服)을 입고 근무 중인 경찰을 마주치면 준법과 질서 유지에 더욱 신경 쓰게 된다. 만일 참사가 발생했던 지역에 당일 소수의 경찰이라도 배치돼 정복을 입고 질서 유지를 위해 근무했더라면 아마도 사람들이 질서 유지에 더욱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좁은 골목에 무질서하게 인파가 집중돼 참사로 이어지는 결과를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특정 사안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 차이를 보이게 된다. 경찰·지자체를 포함한 정부는 국민을 ‘단속·처벌의 대상’보다는 ‘보호의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일해야 할 것이다. 즉,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기보다는 ‘부모·형제자매’를 대하듯이 무한 애정과 관심으로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추상같은 법 집행만이 능사는 아니며, 평상시 법 집행에 있어서 국민들이 사랑과 보호의 온기(溫氣)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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