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신조어 중 ‘자만추’와 ‘인만추’가 있다. 자만추란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이다. 즉, 미팅이나 소개팅 따위 연애를 위한 인위적 만남이 아니라 친구나 지인으로 시작해 자연스레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방식을 지향할 때 쓰는 말이다. 반면 인만추는 ‘인위적인 만남 추구’의 준말로 소개팅과 미팅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또 다른 버전으로는 운명적인 만남을 추구한다는 ‘운만추’가 있다. 1993년 개봉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신조어에 빗대자면 ‘운만추’라 하겠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 이야기를 만나 보자. 

영화는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샘의 아내 매기가 아들 조나와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던 샘은 추억으로 가득한 시카고를 떠나 연고가 없는 시애틀로 향한다. 한편, 볼티모어에 사는 신문사 기자 애니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한아름 안고 본가에 간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동행한 남성 월터와의 결혼 소식을 알리고 가족의 축하를 받는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화로웠던 성탄 연휴 저녁, 애니는 우연히 들은 라디오 사연에 마음이 움직인다. ‘시애틀에 사는 8살 조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는 성탄 선물로 ‘새엄마를 찾는다’며 아빠 대신 공개 구혼에 나선다. 영문도 모른 채 수화기를 넘겨받은 샘은 아내와 행복했던 추억을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그 사연을 듣던 애니는 눈물을 흘리며 남성의 진심에 감동한다.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영혼의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샘의 사연에 감동한 사람은 애니만이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조나의 새엄마를 자처하는 구혼 편지가 쇄도했다. 이 상황에 별 관심이 없는 아빠 샘과는 달리 아들 조나는 편지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 가며 새엄마 찾기에 열중이다. 그러던 중 눈길을 사로잡은 편지 하나를 발견하는데, 아빠와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가 일치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애니를 선택한 조나는 밸런타인데이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자는 애니의 제안을 수락하라고 고집을 피운다. 

한편, 샘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낀 애니는 무작정 시애틀로 향한다. 그러나 짓궂은 장난처럼 애니가 조나 부자를 먼발치에서 보고 있을 때 친구의 아내와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에 애니는 그들 사이를 단단히 오해하고 돌아선다. 이대로 운명적인 이끌림은 어긋나게 될까? 

동부 끝에 사는 여성과 서부 끝에 사는 남성이 큐피드의 라디오 사연으로 만나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마법 같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따뜻한 감성의 로맨스 작품이다. 영화는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 이끌림과 그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다소 매끄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보여 준 연기의 합은 모든 부자연스러움을 덮어 버릴 만큼 훌륭하다. 또한 사랑의 큐피드인 조나 역의 아역 배우 역시 작품을 훈훈하고 따뜻하게 채우는 데 일조한다. 이메일이 아닌 편지로, 인터넷이 아닌 라디오 전파를 통해 소통하던 30년 전 아날로그 정서 또한 영화에 포근함을 더한다. 다가오는 성탄절, 낭만과 사랑을 느낄 법한 따뜻한 영화와 함께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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