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곧 새해가 되니 오늘이야말로 한 해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의 상처가 여전히 아프고, 나라 안팎으로 경제 위기와 전쟁의 암운이 우리의 피부에까지 와닿아 걱정이 매우 큽니다. 더욱 힘든 것은 이런 어둠을 뚫고 나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힘들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칠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렇게도 시끄러운가 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혼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방책으로 공자는 ‘정명론’을 주장합니다. ‘정명’은 ‘명분을 바로잡는 것’을 뜻합니다. 공자는 이를 쉽게 풀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행하기만 한다면 사회적 혼란에서 얼마든지 벗어난다는 겁니다.

 이런 추상적인 해법이 과연 출구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퍼즐 조각들이 가운데 좋은 자리를 두고 서로 자신이 그곳을 차지해야 한다며 다투고 있습니다. 그때 작은 조각 하나가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그 조각을 중심으로 하나둘 조각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곧 퍼즐은 멋지게 완성됐고 다툼은 눈 녹듯 사라졌으며 평화와 안정이 깃들었습니다. 모두가 세상이 어지럽다며 외칠 때마다 소음과 불신은 커지기만 하겠지요.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땀을 흘리는 작은 퍼즐과도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출구는 더 빨리 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법을 ‘세상’이나 ‘남’에게서가 아니라 ‘나’에게서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채봉 동화작가의 「나는 너다」에 나온 ‘전복의 이승과 저승’이란 글에서도 이런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다 속 암초에 서식해 사는 전복은 살다 보니 자신이 다른 조개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조개는 여러 종류로 제각각 살고 있고 심지어는 진주를 지닌 별난 조개도 있음을 알았던 겁니다. ‘왜 나는 비범한 조개이지 못하고 평범한 전복일까?’ 속을 끓던 전복은 산호초 속에 사는 거북 도사를 찾아가 "도사님, 조개마다 다들 똑같은 능력을 주셔야지, 왜 이렇게 피조개가 있고 진주조개가 있습니까? 저도 우아한 조개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거북 도사는, 그것은 자신의 임무가 아니라며 "너는 전복이니 전복답게 살려무나. 네 일을 성실히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너도 진주 못지않게 쓰일 데가 있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전복은 "그렇다면 제 일을 제가 사랑해야겠네요"라며 돌아갔습니다. 이후, 전복은 곁눈질하지 않고 오직 햇볕 거르는 제 일만을 하며 살았습니다. 누구를 닮으려 하지도 않았고 부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전복이 이승에서의 삶을 마치고 저승으로 와보니 한줄기 아름다운 자개가 되어있었습니다. 장롱에 붙어 있던 전복을 보고 한 여인이 탄복하며 말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자개가 있을까!" 전복이 전복다울 때 아름다운 자개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혼란 역시 우리 각자가 우리답게 제 역할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해나갈 때 지금 겪는 어려움에서 벗어나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한 나라로 부활하게 될 겁니다.

 ‘나는 오늘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인도 시인 타고르가 제자들에게 던진 다섯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질문들을 한해의 끝에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던져봅니다.

 "오늘 어떻게 지냈는가?", "오늘 어디에 갔는가?",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는가?", "오늘 무엇을 했는가?", "오늘 무엇을 잊어버렸는가?"

 이 질문들이 흐트러진 우리의 삶을 다시 바로잡아 새해에는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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