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의 공통점은 픽션보다 더 영화적인,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달링’은 갑작스레 사지마비가 온 로빈 캐번디시의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는 우려를 깨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가장 오래 생존한 척추성 소아마비 환자로 기록됐다. 로빈이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사랑과 헌신이 있었다. 영화 ‘달링’을 통해 기적 같은 이야기를 만나 보자.

1957년, 홍차 등 차 중계업을 하는 젊은 사업가 로빈은 아름다운 아내 다이아나와 케냐에서 살고 있었다. 스포츠를 즐기며 누구보다 건강했던 로빈이 아내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난치병에 걸리게 된다. 사지마비뿐만 아니라 호흡마비도 동반한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급히 본국인 영국으로 이송된 로빈의 상태는 다행히 조금 호전돼 말도 하고 눈·코·입 등 얼굴 근육을 쓸 수 있게 됐지만 거기까지였다. 

병원에 갇힌 채 우울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로빈이 아내에게 힘겹게 꺼낸 말은 "죽고 싶다"였다. 이에 다이아나는 남편의 퇴원을 결심한다. 답답한 병원이 아닌 편안한 집에서 아내와 어린 아들의 얼굴을 매일 보며 생활하는 삶 자체가 로빈에게는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유모차를 보던 로빈은 휠체어에 호흡기를 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게 되고, 손재주 좋은 친구 테디가 이를 실현시켜 바깥 나들이도 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인공호흡기가 내장된 휠체어 제작 기금 마련에 앞장서며 병원에서 생활하는 중증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30년 넘게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로빈은 몸이 약해져 폐 출혈이 잦아짐에 따라 떠나야 할 시간임을 깨닫고 아내와 상의 후 큰 결정을 내린다. 늘 유쾌했던 로빈이었기에 흥겨운 파티를 기획해 가족, 친지, 친구들 앞에서 웃으며 작별 인사를 고한다. 그리고 1994년 64세를 일기로 평온하게 눈을 감는다. 

영화 ‘달링’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전신이 마비된 로빈이 삶을 비관하지 않고 모험을 감수하며 새 삶을 개척한 영웅적인 이야기이자, 그를 지지하며 사랑과 헌신으로 함께한 아내 다이아나의 사랑 이야기다. 중증장애와 질환을 다룬 작품들은 그 고단한 여정을 극복하는 과정을 눈물겹게 그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감상적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대신 ‘과연 저 도전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모험을 감행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통해 불가능이란 시도조차 하지 않은 두려움과 걱정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 줬다. 로빈 캐번디시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자선 기금을 모아 인공호흡기가 달린 일명 ‘로빈 휠체어’ 개발로 1974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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