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저는 야구나 축구를 하기엔 어려요. 아직 여덟 살도 안 됐거든요. 우리 엄마가 ‘너는 야구를 해도 수술했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뛸 수는 없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엄마에게 제가 그렇게까지 빨리 뛸 필요는 없을 거라고 말했지요. 야구를 하면 저는 틀림없이 홈런을 쳐서 공을 운동장 밖으로 날려 버릴 테니까요. 그러면 홈까지 걸어갈 수 있잖아요."(「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 잭 캔필드)

어린 소년의 당찬 꿈이 현실 불가능할지라도 왠지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짐작하건대 소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야구 방망이를 들고 홈런을 꿈꾸며 연습장으로 달려갈 겁니다. 꿈이 강렬할수록 행동도 뒤따를 테니까요.

허무맹랑한 꿈을 가진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준 월트 디즈니입니다. 그가 꿈을 이뤄 나간 과정을 상기하면 우리 역시도 다시 일어설 의지가 생기곤 합니다.

「긍정의 생각」(김형수)에 따르면 그는 1901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8살 때부터 배고픔과 학대에 시달리며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소년은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그림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농장일을 잘 못한다고 아빠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오직 그림만을 생각했습니다. 틈날 때마다 종이 위에 석탄 조각으로 동물들을 그리며 언젠가는 꼭 동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만화 왕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사회에 나와 구한 첫 직장은 광고대행사였지만 자기 생각과는 달리 그림 솜씨가 형편없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해고됐고, 친구와 형과 함께 자체적으로 창작 만화영화를 제작했지만 곧 시련을 겪었습니다. 결국에는 거리로 나앉다시피 했습니다. 그래도 꿈을 잊지 않았습니다.

월세 10달러짜리 허름한 창고를 임대해 배고픔을 견디면서 ‘토끼 오스왈드’라는 만화영화 시리즈를 만들었지만, 영화 배급사들에게 캐릭터 권리마저 빼앗기는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할리우드에서 디즈니사를 창립하기까지, 그래서 최대 역작인 ‘미키 마우스’ 시리즈를 만들어 내기까지 그의 궤적은 곧 살아있는 희망의 역사였습니다. 1955년 세워진 ‘디즈니랜드’는 바로 그의 오래된 꿈이 꽃을 피운 결과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한마디 말은 아직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기회는 온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긍정적인 생각이 꿈과 희망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을 얼마든지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그렇게 행동하기란 쉽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는 인큐베이터의 산소 과다 공급으로 망막이 손상돼 실명한 가수 스티비 원더의 사례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어 왕따를 당하던 어린 시절, 수업 중 교실에 쥐가 나타나자 쥐를 잡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쥐를 잡지 못하자 선생님이 원더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의 탁월한 청력을 이용해 쥐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렴."

잠시 후 원더가 가리킨 곳에서 쥐를 잡았습니다. 이때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너는 남들이 못 듣는 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어. 너는 정말 특별한 귀를 가졌구나." 이 한마디가 원더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팝가수가 됐으니까요.

「긍정력 사전」(최규상)에 실린 이 예화를 읽으면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주변의 진심 어린 지지와 응원이 더해진다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커졌습니다. 이런 지지와 응원으로 여러분의 꿈이 이뤄지고,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으로 누군가의 꿈이 실현되는 그런 멋진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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