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올 첫날 새해맞이는 ‘해돋이(日出)’로부터였다. 해가 막 솟아오르는 모습은 벅찬 기쁨 그 자체다. 세세연년 빛나는 해돋이는 하루아침의 시작이요, 한 주 한 달 한 해의 시작이다. 살아가는 나달마다 해 뜨는 날이 아니 없으니 늘 새로움의 연속이다. 해돋이는 ‘새로움’이다. 

 늘 새롭다는 것은 반대로 평상시 하루하루가 같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네 평상시 일상생활이 같은 게 없다는 현상, 이는 곧 ‘무상(無常)’이다. 흔히 이 무상을 종교적 의미로 상주(常住)할 수 없다고 해 ‘덧없음’이라 새겨왔다. 늘 시시각각 새로운 상황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인간의 보편적 삶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엇비슷한 현상을 반복되는 인생사라 착각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또한 각자 자신이 보는 모습이 남들도 다 같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이런 가상(假想)들을 무상이며 덧없음이라 해도 그런 속에 묻혀 살아온 처지에서는 당연할 수 있겠다. 

 이즘은 인터넷 해인시대다. 더불어 인류가 장수하는 영성(Divine-nature)시대가 저 먼 듯 가까운 듯 미래 어디서부터 시나브로 오고 있다. 달리 생각해 보면 무상은 되레 ‘뜻깊음’이라 할 수 있다. 시시때때 변화무쌍한 무상이 날마다 새로운 우리네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해돋이는 또한 ‘자유’다. 1월 1일 아침 첫 햇빛을 맞닥뜨리는 순간은 황홀경에 다름 아니다. 영하 10℃ 이하 한파쯤은 안중에 없다. 딸내미와 둘이서 맞이한 해돋이는 수락산 봉우리와 보루를 금은빛 세상으로 물들였다. 순간 얽매일 어떠한 구속도 없다. 온통 심신을 휘감은 빛은 잠시·잠깐인지 몰라도 풍진 세상사를 잊게 했다. 이리 편안한 여유가 빛이 주는 자유라면 해돋이의 자유는 모두의 것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유라는 용어가 21회 나온다. 민주, 평등, 평화 등등보다 훨씬 많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는 무려 35회나 언급됐다. 강렬한 해돋이 볕뉘 속에 자유가 유독 반짝거린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팥소 없는 호빵과 같다. 

 나아가 해돋이는 ‘원칙’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떠오르니 말이다. 이는 누구나 수긍하는 공정이자 쉬이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공정과 상식은 현 정부의 시정(施政)에서 특히 강조되는 용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에 대한 회계관리 강화 조치는 이에 걸맞다. 앞 정권에서의 불공정과 몰상식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거론조차 하고 싶지 않다. 수뢰나 부정선거 관련 일부 고위정치인들에 대한 현 정부의 지난 성탄절 사면처리도 그리 온당치 않아 보인다.

 올해는 계묘년, 토끼띠의 해다. 띠는 통상 음력을 기준으로 하지만 양력 신정에 흔히 언론에 관련 사항이 보도된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토끼를 상당히 길러 봤다. 풀을 주면 두 앞발과 입으로 오종종히 뜯어 맛있게 씹어 먹거나 어미 토끼가 자주 새끼들을 다산하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토끼는 초식동물로서 자연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속한다. 먹히는 쪽의 처지니 다산할 수밖에 없다. 토끼는 수로 보나 처지로 보나 인간계의 민초, 즉 일반 서민이 연상된다. 강력한 운명적 번식력은 바로 민초들의 ‘번영’으로 유추될 수 있다. 

 한편, 보름달이 뜰 때 방아 찧는 옥토끼의 민담도 내 기억 언저리에 남아 있다. 지난해 말 우리의 달 탐사 위성 다누리호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있었다. 비록 정서적 낭만은 사라졌지만, 달 토끼는 여전히 우주로 비상하는 한국의 ‘희망’으로 남았다. 중학시절 전교생이 학교 앞산 꼭대기에 올라 토끼몰이를 한 적이 있다. 토끼는 앞발이 짧아 위로 달려야만 도망가서 살 수 있다. 이는 목숨 건 토끼의 고난 ‘극복’의 지난한 계책이다.

 이제, 날로 뜻깊고 새로우며 활짝 핀 자유 속에 굳건한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올해는 여러모로 어렵다고들 한다. 위기는 기회다. 그럴수록 서민들이 보다 높은 희망을 품고 어려움을 극복해 다함께 번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해돋이와 토끼의 상관관계는 찰떡궁합이다. 숭고한 모성성에 생명력이 충만한 새해, 출생의 기적이 일어 이 나라 출산율이 배가되기를 바란다. 시조로 더한다.

- 계묘년 해맞이 - 

 하늘이 먼저 깨어
 빛 누리를 터뜨릴 때
 
 오만상이 달떠설랑
 환해지다 다 못하여
 
 생사의
 굴레를 넘어
 온 우주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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