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임조순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최근 혹한의 날씨에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삶이 방송되는 걸 보았다. 간혹 언론에서 나오는 내용이기에, 어렵게 사는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요즘 벌이는 얼마나 되나에 관심이 갔다. 충격이었다. 6시간 넘게 270㎏을 수거했는데 1만800원! 이 돈으로는 생계조차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이 전국적으로 수만 명에 달한다. 극단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경제학은 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가난 뿐이겠는가, 심각한 수준의 경제사회적 불평등, 지구환경의 위기 등의 문제는 GDP 성장만을 우선시하는 경제학의 책임이 크지 않을까?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분배하는 행위를 경제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경제행위를 연구하는 경제학은 생산영역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경제학을 희소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는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인간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경제학을 선택의 학문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의 학문적 영역을 좁혀왔다. 합리적인 개개인의 선택이 더해진 합계를 경제라고 간주하는 주류 경제학은 사람들이 부딪치며 갈등하고, 협동하고, 타협하고, 사랑하는 인간공동체라는 사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이유는 결국 인류의 행복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사회과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학문분야다. 그런데 오늘날 경제학은 사회과학으로서 사람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분배하는 사회구조를 공동체를 위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지,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와 같은 ‘가치’의 문제를 연구의 중심에 놓지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가정과 제약을 전제로 한 수학 모형을 만들어 자연과학화하던 경제학은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지 못했다. 19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끊이지 않고 있는 실업과 빈곤, 경제 위기, 심각한 경제사회적 불평등 확대, 기후위기는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듯 하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어디에 갔냐’고 물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가 경제학이 현실경제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비꼬았던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영광스럽게도 매년 노벨상(이 상의 정식명칭은 ‘알프레도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으로 엄격하게 말하면 노벨경제학상은 잘못된 표현임)을 받는다. 1969년 이후 계속되어 왔으니 50여 명 이상의 대단한? 경제학자들이 배출됐다. 그런데 이 상 수상자의 80%이상이 미국 국적자이며, 미국에서 공부한 유럽의 학자들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모든 수상자가 미국 경제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상이라는 권위가 이들의 이론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주고, 환상을 심어주고,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위상을 높여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식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이념이 지난 수십 년 전 세계 경제 주체들을 지배해왔고, 이들이 채택한 경제정책의 결과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은 불평등의 심화와 기후위기의 블랙홀이 됐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제는 인간의 삶을 수학모형화하고, 거기에서 자연과학적 권위를 찾고 싶어하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경제적 이익만을 쫓는 합리적 인간이 아니다. 나누고, 베풀고, 이해하고, 돌봐주고, 같이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체이다. 전 세계적인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자연상태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중하위에 위치한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고 만물의 영장으로 지위를 누린 이유 중 하나로 소통과 협력의 능력을 꼽았다. 지금 이시대 경제학에 필요한 것은 맹자의 측은지심을 넘어 율곡 선생이 말한 측은지심, 즉 우물가에 빠질 위기에 있는 아이를 보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구해야 하는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새해에는 ‘가치’에 방점을 둔 경제학 논문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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