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의 단골 소재인 외계인을 그린 작품의 상당수는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을 다룬다. 미지의 존재가 지구에 나타나 인류와 대립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지구인의 이야기는 SF적 외피를 입은 액션영화다. 한편, 2016년 개봉한 영화 ‘컨택트’는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만남을 대립을 기반으로 한 역동적인 액션에 두는 대신 우아한 움직임과 철학적 깨달음으로 대체했다. 1988년 장편 데뷔작이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는 현재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중 정점을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느 날 지구 곳곳에 12개의 거대 UFO가 출몰한다. 한쪽 면이 볼록한 검은 비행물체는 직립 형태로 지표면에 떠 있다. 이 물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18시간마다 아래쪽 문이 주기적으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할 뿐이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 생명체의 신호 해석을 위해 물리학자인 이안과 함께 비행체가 있는 현장에 도착한다.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선내로 진입한 루이스는 뿌연 반투명 창을 사이에 두고 미지의 생명체와 대면한다. 인간의 언어와는 확실히 다른 소리를 들은 루이스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먼저 인간의 언어를 알려 준다. 이에 화답하듯 외계 생명체도 자신의 언어를 표기한다. 

외계 생명체는 다리가 7개라서 ‘헵타포드’라 명명됐다. 오징어와 유사한 형태의 헵타포드는 발에서 먹물을 뿌리는 듯한 행동으로 원형의 표의문자를 나타냈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없음을 파악한다. 그렇게 헵타포드 문자를 이해할수록 루이스는 자신의 어린 딸로 추정되는 한 아이의 성장 과정을 떠올린다. 

한편, 인류의 인내심은 바닥을 향했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전 세계 보도가 제한적인 가운데 사람들의 공포심은 깊어졌고, 급기야 12대의 우주선이 정박한 몇몇 나라에서는 공격을 준비하며 전쟁 양상마저 띠었다. 시제가 없는 외계어를 학습한 루이스의 사고는 언어의 영향을 받아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전환됐고, 루이스는 과거를 떠올리듯 미래를 기억하게 됐다. 이 능력을 활용해 루이스는 전쟁을 막고 아픔이 반복될 자신의 미래를 또다시, 그러나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인다.  

테드 창의 SF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 ‘컨택트’는 외계 생명체와 인류의 만남을 통해 소통, 공존, 평화의 가치를 말하는 한편, 루이스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 속에서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흔히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좋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 결과는 기대와 다른 경우도 많다. 이때 결과가 나쁘다면 과정도 좋지 못했다고 봐야 할까? 만약 좋지 못한 결과를 미리 알게 된다면 다른 선택을 취하는 게 최선일까? 그렇다면 과연 그 다른 선택은 더 나은 과정과 결과를 가져올까? 

루이스는 깊이 상처받으리라 알지만 똑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그 까닭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 주는 가치에 의미를 뒀기 때문이다. 영화 ‘컨택트’는 공존이라는 인류의 본질과 인생의 의미는 결과가 아닌 매순간에 깃들어 있음을 깊이 있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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