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 138분

작품은 2014년 ‘도희야’로 데뷔한 정주리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도희야’에서 함께한 배우 배두나가 사건의 진실을 캐는 형사 유진 역을 맡았다. 배두나는 ‘학생 하나 죽은 일이 무슨 문제냐’는 세상의 외면에 분노하며 진실을 추적하는 유진 역으로 특유의 섬세한 연기를 선사한다.

소희는 친구들과 연습실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춤추기를 좋아하는 특성화고 학생이다. 언제나 당당하고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지만 졸업을 앞둔 소희도 취업이라는 관문 앞에선 작아질 수밖에 없다.

담임 선생은 어렵게 구한 대기업 자리라며 소희를 콜센터 현장실습으로 떠밀고, 그렇게 소희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소희는 온종일 다닥다닥 붙은 책상 앞에 앉아 헤드셋을 착용한 채 고객 전화를 응대하는 일을 한다. 짜증스러운 요구, 욕설, 트집은 좀체 참기 어렵다.

업무가 서투를 수밖에 없는 소희는 얼마 못 가 고객 응대 횟수인 ‘콜수’조차 채우지 못하는 낮은 성과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는 고된 상황을 벗어나려고 근무시간을 넘겨 일에 몰두하지만 돌아오는 건 최저임금에도 미치는 못하는 임금뿐이다.

그가 부당한 대우 앞에 목소리를 높여도 달라지는 부분은 없고, 소희는 안팎으로 점점 고립돼 간다. 더는 회사에 가기가 싫지만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의 ‘어둠의 노동’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럼에도 현장실습 과정에서 법규와 절차를 지키지 않는 일은 계속됐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파견 간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일도 반복됐다. 영화는 이렇게 아무리 부당함을 외쳐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주목한다. 오랫동안 문제를 방관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겨 온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다음 소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음 소희’는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주목받았다.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의 폐막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칸영화제는 ‘다음 소희’를 두고 "충격을 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제26회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도 폐막작으로 소개돼 감독상과 관객상(은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제12회 암스테르담영화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10여 개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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