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송 국제PEN한국지부 인천지역 부회장
신미송 국제PEN한국지부 인천지역 부회장

기호식품으로 가장 대중적인 음료가 커피 아닌가 싶다. 아침에 눈 뜨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각성 작용을 하는 카페인 때문이겠지만 기운이 나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전에 재미있는 경제 뉴스 기사를 봤다. 미국의 예이기는 하지만 이십 대부터 은퇴할 나이인 육십 중후반까지 40년 동안 커피 한 잔 값을 모아서 계속 투자한다면 5억 이상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상당한지라 눈여겨본 기사였다.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를 포기한 대가가 큰 액수의 돈으로 환산되는 계산이 놀라웠다. 바삐 살아가는 40년 동안에 정신건강이나 업무와 공부의 집중도,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대화에 반려 역할을 해 준 커피 한 잔의 기여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커피를 사치품 범주에 넣을 수 있나? 커피 한 잔 값이 낭비라는 생각은 무리한 해석이다. 대표적 기호식품인 담배나 술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만, 커피는 대체로 정신건강에도 기여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이 들어 있어서 면역세포 작용에도 도움을 주는 식품이라 할 수 있다.

커피에 진심인 이에게서 커피 이야기를 들었다. 커피 전반에 관한 지식을 전하는 그분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져 커피 한 잔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긴 여정과 그 여정에 손을 보탠 사람들의 노고가 새삼 고마웠다. 세상의 물건은 무엇이든지 완성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고, 수고한 이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었기에 완성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 한 잔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동을 투자해 준 사람들 덕분에 취향껏 커피의 향을 즐기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이 유난해졌다. 예전에 스타벅스에서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힐난하던 때도 있었는데, 국내 커피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올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를 8조6천억 원쯤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략 1년에 353잔의 커피를 마신다. 세계 평균이 130잔인 점과 비교하면 거의 3배는 족히 더 마시는 셈이다. 프랜차이즈 커피시장도 미국·중국 다음이라 하니, 엄청난 커피 소비국이 됐다.

한때 커피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신체 에너지 소비량을 늘려 줘 대사작용이 활발해져서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했었다. 또 다른 커피의 효능으로 제2형 당뇨병 발병률을 33%나 낮춰 준다는 연구 발표도 있고, 장운동을 좋게 해서 변비를 예방해 준다고도 하고, 심장 기능을 향상시켜 주고, 통풍 예방 효과도 있고, 숙취 해소까지 도와준다고 했다. 근자에 발표된 자료에는 우울증 발병을 낮춰 주고 장기 기억력을 향상시켜서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온갖 유용한 커피의 효능이 바르게 검증된 것이라면 커피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찬양할 만하다.

커피를 분류하는 데는 품종 외에도 생산된 나라의 토양, 기후, 재배 방법, 수확 시기와 수확하는 방법, 말리는 방법 등등 가공 단계 전부터 세분화된다. 세밀한 분류법에 따라 고유의 맛과 향기를 지닌 무궁무진한 커피의 세계를 맛보는 호사는 현대인의 소소한 행복이 됐다.

커피는 사람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커피와 관련된 일화를 남긴 유명인이 많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는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커피 칸타타’라는 오페라 곡을 작곡했고, 엄격한 커피 사랑으로 원두 60알 철칙을 지킨 베토벤은 아침 식사에 꼭 60알의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마셨다. 방문객이 있으면 인원수에 따라 2배, 3배 정확하게 원두를 세어서 커피 대접을 했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유명인 중 최고의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하루에 무려 40~50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인 발자크도 하루에 40잔 이상의 커피를 마셨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소설 창작에 매진하느라 각성제 역할을 해 주는 커피가 필요했고, 18년을 기다려 결혼한 백작부인과는 과로와 카페인 중독으로 신혼 5개월 만에 사망한 슬픈 사연이 있다. 또 브람스는 자기만큼 완벽하게 커피를 끓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 반드시 자신이 끓인 커피만 마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커피 사랑이 각별했던 고종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쟁 치열한 우리나라에 커피숍이 10만여 개나 된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위안이 40년 커피값 투자에 비해 손실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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