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 변호사
한재웅 변호사

2023년 2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55년 만에 선고된 판결이며,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불법행위를 처음 인정한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1968년 베트남 퐁니, 퐁넛 마을에서 발생했는데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고 의심되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미군의 조사보고서나 생존 피해자의 증언 등 관련 증거가 어느 정도 있어 재판이 가능했다고 보인다. 재판 과정에서 한국군으로 참전한 군인이 직접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 학살이 있었는지 여부와 더불어 소멸시효와 전쟁 직후 있었던 군사실무약정의 적용도 쟁점이었는데, 재판부는 "원고가 소를 제기할 때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소멸시효 주장을 권리남용으로 판단했고, 군사실무약정은 기관 간 합의에 불과해 "베트남 국민의 청구권을 배제하는 법적 효력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법원이 한국군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해 치우침 없이 판단하며 피해자인 베트남인의 권리 구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판결 직후 베트남 정부도 판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 국민의 권리를 보호한 점을 매우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원고 측 변호인은 "이번 판결은 한국 사법기관이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보내는 최초의 위로문이자 사과문"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군의 베트남 학살 의혹을 1999년께 처음 언론으로 접하고 한동안 매우 복잡한 심정이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피해를 준 일이 없다고 교육을 받아 왔고, 실제로 최소한 근대 이후에는 외국에 대해서 직접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은 낯설었다. 심정적으로 우리나라가 전쟁범죄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사건이 쉽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학살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 베트남 파병 군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초 민간인 학살 보도가 나온 당시에는 고엽제 전우회 등에서 격렬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쟁점은 학살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할지 여부이지, 참전 군인의 개인이나 집단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파병한 것이 정당한지 여부는 우리 현대사의 큰 논쟁거리지만, 처지를 떠나 베트남전에 실제로 참전했던 군인들은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희생자이자 어떻게 보면 피해자로 봐야지 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파월 군인들은 국가가 부여한 임무에 따라 전쟁을 수행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전쟁 후에도 장애나 고엽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받았다. 베트남에 파병을 결정해 우리 군인을 보낸 것은 국가이고, 군인을 관리할 책임이 있었던 것도 대한민국이다. 전쟁은 평범한 사람도 괴물로 만들 수 있다.

그 사지(死地)에 군인을 보내 불행히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그 책임은 우선 국가가 져야 하며, 개인의 책임은 그 뒤 문제다. 결국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점이 분명하다.

가해자로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이후에는 역사가 된다. 대한민국이 베트남에 군인을 보냈고, 그 역사를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면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 군인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은 대한민국, 즉 우리 모두에게 있음은 분명하다. 이번 판결을 우리의 책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정부도 좀 더 적극적인 태도와 대책을 강구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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